호세아에서 여호수아로, 새 이름에 담긴 하나님의 새 역사
미리암과 아론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를 회복시키는 은혜의 훈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란 광야에 도착하고 가나안 정탐이 시작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여호수아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예고하십니다.
[성경말씀]
민 13:1-16(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지파마다 지도자 한 사람씩 보내라 하시니 3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내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이었더라 4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5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7 잇사갈 지파에서는 요셉의 아들 이갈이요 8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9 베냐민 지파에서는 라부의 아들 발디요 10 스불론 지파에서는 소디의 아들 갓디엘이요 11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12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13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14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15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라 16 이는 모세가 그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하루말씀]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겉으로는 미리암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론에게도 해당되는 심판이었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구별하신 인물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성결을 지키고 모든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은혜를 베푸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미리암뿐만 아니라 아론에게도 영적인 훈련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이나 선지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엄중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암은 주님이 다스리시는 공동체에서 쫓겨나 백성들과 구별된 채 완전히 버려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모세에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모세 역시 고통받는 형제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민 13:13)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민 13:14) 여기서 침을 뱉는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은 자에 대한 모욕과 저주의 표시입니다. 특히 유대 사회 문화에서 아버지로부터 침 뱉음을 당한 자는 7일간 집에서 근신한 후에야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7일 격리의 의미: 은혜와 훈련
아들이 아버지에게 침 뱉음을 당하더라도 일주일을 근신해야 하거늘, 어찌 근신보다 치유를 먼저 구하느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리암은 7일 동안 진영 밖에 격리되었습니다. 그런데 7일 격리의 전제는 이 기간 동안 반성의 가능성이 있는 자, 곧 문둥병이 나을 가능성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미리암을 용서하셨고 문둥병도 이미 치유하셨음을 의미합니다. 7일을 근신하게 하신 것은 미리암과 아론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다시금 주님께 예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란 광야 도착과 정탐의 배경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 도착하였습니다(민 13:16). 바란 광야는 과거 아브라함의 첩 하갈과 이스마엘이 집에서 쫓겨난 후 정착한 지역입니다. 게다가 지금 백성들이 머무는 곳은 시내 광야와 가나안 땅 최남단을 잇는 접경지입니다. 따라서 이제 가나안을 향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입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기로 결정하신 땅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정탐은 사실상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정탐 이야기가 삽입된 것일까요? 민 13장과 병행 본문인 신명기 1:19-25에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신 1:21)
그러나 백성들은 주저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신 1:22)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마음을 수용하시고, 12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를 선출하여 정탐꾼으로 보내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고, 그 중에는 8절에 기록된 에브라임 지파의 지도자 눈의 아들 호세아가 있었습니다.
호세아에서 여호수아로: 새 이름이 담긴 새 역사
특별히 16절을 보면,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부릅니다. 호세아는 ‘구원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호세아에 ‘야(יָהּ)’를 더하여 새로운 이름 여호수아를 지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입니다.1‘여호수아(יְהוֹשֻׁעַ)’는 히브리어로 ‘여호와(YHWH)’와 ‘구원(yasha)’의 합성어로, 신약의 ‘예수(Ἰησοῦς)’와 동일한 어원을 가집니다. 이름의 변경은 단순한 개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 부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실 때는, 언제나 인간의 역사에 어떤 전환점을 일으키실 때였습니다. 창세기 17:5에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고, 창세기 32:28에서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바꾸시는 것은,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참여하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며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일으키시는 역사에 믿음으로 참여하며 오직 주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민수기13장, 바란광야, 여호수아, 가나안정탐, 하루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