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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권위와 믿음으로 여리고 정탐을 명합니다. 40년 전 불신앙의 정탐과 달리, 이번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정복된다는 확신의 행동이었습니다. 두 정탐꾼을 숨긴 라합의 용기 있는 행동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피난처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2장 1-7절(개역개정)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스라엘 자손 중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 밤에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즈음에 그 사람들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러나 그 여인이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 길로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사람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백성의 지도자로 지명하시고, 그에게 지혜의 영을 충만하게 하심으로 모든 백성이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신 34:9)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실 때에 허락하셨던 영적인 권위가 여호수아에게도 그대로 적용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평생에 능히 대적할 자가 없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수 1:5)
그러므로 이제 여호수아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실행합니다. 먼저는 백성들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보이고, 그 믿음을 준행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장 11절에 이런 명령을 합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그리고 스스로 기업을 선택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분리되려 했던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에게도 명령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1:13)
그러자 이 믿음의 명령에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지파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1:16) 또한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1:18)라고 고백합니다.1이 벌은 아간의 경우에 실제로 집행됩니다(여호수아 7장). 그리고 이어서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라고 선언합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세 번째 명령을 실행합니다. 그것은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40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보내졌던 열두 명의 정탐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가나안 정탐이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가운데 행해졌던 일이었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여호수아는 이 일을 다시 행하는 것일까요?
사실 여호수아의 지금 행동은 그때의 일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때는 ‘정말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일까?’ 하는 의심과 불신앙의 행동이었다면, 지금의 이 결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곳이 정복되리라’는 믿음과 확신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건너편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여리고에 보냅니다. 특별히 이 2장 1절의 본문은 개역개정판에서 이전 번역과 조금 다르게 표현됩니다. 이전 버전인 개역한글에서는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라고 기록하여 ‘정탐하는 자 두 사람을 은밀히 보냈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개역개정에서는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라고 기록하여 ‘정탐하는 전문가를 보냈다’는 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번역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핵심 단어는 ‘가만히’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헤레쉬’로, ‘침묵하다’, ‘말이 없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다시 말해, 40년 전 가나안 정탐꾼이었던 여호수아는 장로나 백성이나 혹 적군들도 알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잘 믿는 두 사람을 골라 정탐을 은밀히 행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믿음 없는 정탐꾼들이 왜곡된 정보를 전함으로 인해 모든 백성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을 그가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 13:25-14:3)
이 두 정탐꾼이 요단강을 건너 처음 당도하여 유숙하는 곳은 라합이라는 기생이 사는, 매춘업을 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들이 창녀의 집을 찾은 이유는, 이곳이 일반 가정집과 달리 돈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고, 여행객이 잠을 청하는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여리고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정탐꾼이 여리고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여리고 왕이 알게 됩니다. 아마도 요단강 동편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일의 소문이 전해지면서 정탐에 대한 경계를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왕은 즉시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때 라합은 이미 두 정탐꾼을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 속에 숨긴 뒤였습니다. (6절)
그래서 라합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즈음에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4-5절) 그러자 그들이 요단 나루터까지 두 사람을 쫓아갔고, 뒤쫓는 사람들이 나가자 성문은 닫혔습니다.
여기서 라합은 여리고 왕의 행동을 미리 알고 이미 두 정탐꾼을 숨겼습니다. (4, 6절)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이 ‘이미 숨긴지라’입니다.2‘이미 숨긴지라’의 히브리어 원형은 ‘차판(왓티츠페노)’으로,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무엇인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불량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것을 숨기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단어는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불순한 것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문장에 하나님이 주어가 되실 때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음모와 재난 가운데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주시고, 숨겨주시고, 구원해주시는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 27:5; 31:20)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 27:5)
그러므로 두 정탐꾼을 위해 행해진 이 일은 라합의 믿음이요, 믿음에 의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적인 방법이요,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행동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에 의해 보호받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라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수아2장, 라합, 정탐꾼, 강하고담대하라, 하나님의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