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프로젝트 에스라 느헤미야 개요 12

 

바이블프로젝트 에스라 느헤미야 개요

바이블프로젝트 에스라 느헤미야 개요

# 에스라 느헤미야서 입니다

현대 성경에는 보통 이 둘이 나뉘어 있지만 그렇게 된 것은 먼 후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원래는 한 저자가 쓴 한 권의 책 이었죠.

이야기는 바벨론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간 지 약 50년 후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읍과 그들의 삶을 재건 하던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재건에 힘쓴 3명의 지도자들에게 주목하는 데요. 바로 스룹바벨,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 입니다. 책의 구성 또한 각 지도자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스룹바벨은 큰 무리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제건하고 그로부터 70년 후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와서 토라를 가르치고 공동체를 재건하며, 다음으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지휘 합니다.

3명의 이야기는 매우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는데요. 먼저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페르시아 왕이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자원과 도움을 제공합니다.

이들의 노력은 방해에 부딪치지만 결국 극복해 냅니다. 그러나 세 이야기 모두 이상하게도 실망스러운 결말로 끝이 납니다.

# [에스라 1-6장] 스룹바벨

그럼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보죠

이야기는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그는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게 하락하는 데요. 저자는 이것이 언젠가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간다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된 거라고 말하죠

이 성취는 포로 교환 이후에도 다른 많은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될 거라는 소망을 안겨줍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미래의 메시아 왕에 대한 소망,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성전 재건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열방이 복을 받을 소망,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말이죠

그럼 이 모든 소망을 염두에 두고 스룹바벨의 이야기를 읽어 봅시다

[1-2장]

그는 ‘바벨론의 씨’라는 뜻의 이름처럼 바벨론 포로기에 태어난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써 큰 무리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

그들은 정착 후 우선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고 이후 성전을 재건하는 데요.

[3-6장]

성전의 기초를 놓는 예식과 최종 봉헌식이 핵심적인 장면이죠

과거의 성막과 성전 봉헌식을 떠올려보면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의 임재가 불과 구름 처럼 내려와 백성 가운데 거하셔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성전을 보며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로몬의 성전을 경험한 장로들은 크게 통곡합니다. 그들의 영광스러운 과거나 소망하던 미래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

[4장]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방해 세력이 등장하는데 매우 이상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 중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가지 않은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계속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성전 재건을 돕겠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스룹바벨은 이를 거부하면서 너희는 이 성전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죠. 당연히 갈등이 일어났고 스룹바벨이 이를 극복하기는 하지만 정말 이상합니다

선지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하나되어 열방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 할 거라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죠. 정말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에스라 7-10장] 에스라

다음은 70년 후 에스라의 이야기입니다.

[7-8장]

그는 바벨론 포로 시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토라에 능통한 학자 였는데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임명되어 한 무리의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죠.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영적 제 각성과 사회적 재건을 간절히 소망했지만 우리는 또다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귀환한 사람 중 다수가 기존의 예루살렘 주변에 살던 포로 출신이 아닌 여성들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 여인들도 있었죠

그러자 에스라는 율법의 계명을 들어 이스라엘은 거룩하니 고대 가나안 족속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예루살렘 주변에 살던 자들은 가나안 족속처럼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 시킬 것이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에스라는 가슴을 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지도자들을 결집하고 법령을 시행해 이 모든 결혼을 무효화하고 이방 여인들과 아이들 쫓아 내도록 하죠

하지만 이 법령은 이혼 한 남성이 일부만 기록된 걸로 보아 부분적으로만 실행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10]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매우 이상한 데요

먼저 하나님은 에스라에게 이런 일을 명령하신 적이 없습니다. 에스라가 이 법령을 만들도록 한 건 예루살렘 지도자들이었죠.

둘째 당대의 선지자 말라기는 포로 되었던 자들이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고도 했는데요.(말 2:13-16)  이같이 법령에 의한 상반된 결과는 이 책에서 반복되는 실망스러운 결말과 일치합니다.


# [느 1-7] 이제 느헤미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정부에서 일하는 유대인 관료 였는데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합니다. 결국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벽을 재건 하러 가라는 허락을 받고 심지어 무장한 호위 병과 필요한 지원도 받아 내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재건 작업을 시작한 후 그 역시 예루살렘 주변 거류민들과 갈등을 겪습니다.

또 다시 이야기에 긴장감이 감돌죠. 당대의 선지자였던 스가랴는 하나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에는 성벽이 없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여 모든 민족이 와서 언약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느헤미야는 정반대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주변 거류민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당연히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죠 느헤미야는 자신이 받은 소명을 참되고 용기 있게 수행했지만 늘 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과연 이런 갈등이 다르게 해결 될 수는 없었을까요. 이런 질문을 안고 책은 두 방향의 결론에 이릅니다.

# 먼저는 긍정적 다음은 부정적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영적 제 각성을 위해 온 힘을 모았는데요 귀환한 포로들을 축제에 한데 모아 7일 동안 온 백성에게 율법을 읽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켜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언약을 갱신하고 율법의 계명을 모두 따르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크게 기뻐하죠

이게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이 책은 정말 우울하게 끝납니다.

느헤미야는 성읍을 돌아보다가 백성들이 그들의 맹세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스룹바벨이 애써 재건한 성전은 방치되어 소홀히 관리되고 자격 없는 자들이 돌보고 있고 에스라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백성들은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에 일을 하고 있죠

심지어 그들은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 주위에 시장을 열고 안식일에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화가 폭발합니다. 사람들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며 야단을 칩니다.

율법의 명령에 순종 하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적어도 제가 노력했다는 것은 기억해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끝나다니 너무 이상하죠

물론 예상 하긴 했지만요 사실 이렇듯 실망스러운 결말은 의도적으로 배치 된 것입니다

# 이 책은 도대체 성경의 전체 줄거리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기억하시죠?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메시아, 성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적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왔다고는 해도 그들의 영적 상태는 이전과 다르게 전혀 없었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최선을 다했지만 정치 사회적 개혁은 핵심적인 인간 마음의 문제를 다루지는 못한 겁니다.

이 책의 요지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가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온전히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께 순종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책이 실망스럽게 끝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지혜서와 예언서를 계속 읽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찾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