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프로젝트 요나 32
바이블 프로젝트 요나 32
요나서 자기의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싫었던 반항적인 선지자의 대한 불운한 이야기입니다. 요나서는 구약 의 선지서 중에서 독특한데요. 보통 선지서들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데 반해 이 책은 선지자가 한말 대신 선지자의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기 때문이죠 정말 얄밉고 형편없는 선지자의 대해 말이죠
요나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 딱 한 번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최악의 왕 중 하나인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때 인데요. 요나는 왕의 편을 들면서 그가 전투에서 이겨 이스라엘 북방 경계에 있는 영토를 모두 되찾을 것이라고 예언했죠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아모스 역시 여로보암 2세 에 대해 예언을 했다는 건데요. 그는 요나와는 달리 여로보암이 너무나 끔찍한 왕이라서 그 영토를 모두 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이 시작하기도 전에 요나의 성품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요나서는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문학적인 대칭과 균형이 뛰어나죠 1장과 3장은 요나가 이방인들을 만나는 이야기인데요
먼저는 선원들을 만나고 다음은 요나가 증오하는 원수인 니느웨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리고 각 부분은 요나의 이기심과 이방인들의 겸손과 회개를 희극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주죠. 2장과 4장은 요나의 기도를 담고 있는데요 하나는 일종의 회개의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지나치게 좋은분이심을 못마땅해 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세심한 구성 만큼이나 이 책은 독특한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야기에는 무척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가 등장하지만 그는 반항적이고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정말 부도덕 할 것 같은 선원들은 오히려 유순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오지요. 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잔인한 제국의 왕은 어떤가요.
그는 요나의 다섯 마디 뿐인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심지어 왕의 소떼 마저 회개 하죠.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우리는 ‘풍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잘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유머와 반어법을 사용해 그들의 어리석음과 성격적 결함을 비판 하지요. 그럼 이제부터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나와 선원들
이야기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스라엘의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과 불의를 질책하는 임무를 주시는 걸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동쪽 니느웨로 가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가장 먼 서쪽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발견합니다. 여기서 드는 질문은 바로 왜냐는 건대요 요나는 도망치는 걸까요 두려운 걸까요. 단지 니느웨 사람들이 싫은 걸까요. 아직 그 이유는 안나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는 이방 선원들이 가득한 배에 올라 타고는 배 밑 창으로 내려가 누워서 깊이 잠이 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큰 폭풍을 보내 그 분의 선지자를 깨우시죠 그때 역설적으로 갑판 위해 선원들은 멀쩡하게 깨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깨닫고 있구요. 그들은 이 상황이 신의 능력에 의한 거라는 걸 분별할 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아 요나가 문제의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아낸 뒤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하자 요나는 종교적인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 놓습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 라고 말이죠.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그래요 하나님은 분명 바다와 육지를 만드셨어요. 그렇다면 요나는 이런 하나님께로부터 배를 타고 도망 갈 만큼 멍청 한 걸까요. 선원들이 요나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묻자 그는 “나를 바다에 던져 죽이시오” 라고 말합니다. 언뜻 듣기에는 숭고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요나의 가장 이기적인 행동 임을 알 수 있죠.
니느웨로 가는 걸 피할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요. 결국 그는 선원들이 자신을 죽이도록 해서 죄 없는 이들의 손에 피를 묻히도록 했던 겁니다. 물론 그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요나를 바다에 던지면 서도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폭풍은 잠잠해 졌고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죠. 요나와 달리 선원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 한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니느웨로 부터 도망치던 요나의 계획을 꺾으시고 갈아 앉던 요나를 위해 기이한 바닷속에 무덤을 준비 하셨는데요
바로 큰 물고기 뱃속 이었죠. 만일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요나는 틀림없이 죽었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모든 게 뒤 바뀝니다. 바다 속 요나의 죽음은 도리어 그가 다시 생명을 얻는 통로가 되는 데요.
요나의 첫번째 기도
이 짐승의 배 속에 갇힌 요나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지는 않지만 대신 자신을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서원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참 재미있는데요.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로 토해 내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한번 요나에게 외치라고 명하시고 요나는 그렇게 합니다.
요나와 니느웨 사람들
니느웨는 거대한 성읍 이었기 때문에 다 돌아보려면 며칠을 걸어다녀야 했는데요. 도착한 첫날 요나는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5개의 단어인데요. 그의 설교는 매우 짧고 또 이상합니다. 무엇이 빠졌는지 살펴보면 니느웨 사람들의 죄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누가 그들을 무너지게 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거죠.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요나가 일부러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하는 것일까요.
마치 자신의 예언을 자신 스스로 방해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 하도록 말이죠. 요나는 아무 노력도 수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 다섯 마디 설교를 하자 마자 니느웨왕과 그의 소떼를 포함한 성읍 전체가 슬퍼하며 잿더미에 앉아 회개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또 한 번 악한 이방인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분의 선지자 보다 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그 성읍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자, 이제 이야기가 얼마나 기발한 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요나의 짧은 설교 의 마지막 단어인 ‘무너지리라’는 정확히는 ‘뒤집어 진다’는 뜻인데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처럼 성읍이 전복되고 파괴될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무언가가 변하다’ 즉 ‘뒤집히거나 정반대로 달라진다’는 의미로도 사용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습게도 요나의 예언은 결국 실제가 됩니다 그가 의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니느웨가 정말 뒤집어진 것이죠 그들의 회개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말이죠.
요나의 두번째 기도
이제 마지막 장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 집니다 요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두 번째 기도를 드리는 데요 먼저 하나님께 자신이 1장에서 도망갔던 이유를 말합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인지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요나는 대단하게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신 내용을 인용해 도리어 그 분을 모욕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이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 마저도 용서 할 분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이죠. 요나의 말에서 진절머리가 난 게 느껴지네요.
그는 대화를 끊고 하나님께 그냥 그 자리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합니다 그의 원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면서요. 다행히 하나님은 요나의 원대로 해주지는 않으시고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고 물어 보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을 무시하고 성읍 밖으로 나가 주변 언덕에 초막을 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기다립니다. 혹시 아나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걸 도로 뉘우치고 멸망하게 될지 그때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박넝쿨로 요나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 주시고 그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님이 작은 벌레를 보내 넝쿨을 갉아 먹게 하시고 뜨거운 태양 빛 아래 그늘을 잃은 요나는 다시 하나님께 한번 자신을 죽여 달라고 간청 하지요 하나님은 다시 요나에게 “네가 화내는 것이 정말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요나는 대답합니다 “네 당연하죠 재발 절 죽게 해주세요” 이것이 이 책에서 요나가 한 마지막 말입니다.
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내져 집니다. 하나님은 이방 넝쿨 사건을 통해 요나가 깨닫게 하려고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이 넝쿨 하나가 아깝고 소중해 화를 냈습니다. 고작 하루 절기였던 식물을 가지고요.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에게 “사람이 방 넝쿨 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고 물으십니다. “내가 박 넝쿨을 아낀 것처럼 하물며 이 큰 성읍 느느웨와 그곳에 사는 갈 길을 잃은 수천명의 사람들과 소 때까지도 내가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이죠.
이 책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그의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시는 듯한 모습으로 끝나는데요.
요나의 대답은 뭐 였을까요 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죠
핵심은 이 책이 여러분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문은 사실 독자인 여러분을 향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원수 마저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나요. 이렇게 이 책은 독자를 향해 거울을 비춥니다. 요나서를 통해 우리의 가장 악한 속성을 확실히 보게 되면 원수를 사랑하시며 요나와 다를 바 없는 우리를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과 감사가 우러 나오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이 특이한 이야기는 사실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신 지를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자 우리의 삶에 깊은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