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10절 강해 [하루말씀]
[성경말씀]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하루말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치유기적은 (2:4)에 기록된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의 말씀과 (2:46)에 기록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의 실제적인 역사를 기록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은 낮을 오전 6시에서 저녁 6시 까지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를 더하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제3시는 오전 9시, 제육시는 정오, 제구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번 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식적인 기도시간이 이른 아침, 정오, 그리고 해질 황혼 무렵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아침과 오후에 제물이 드려지는데 이 중 제구시인 정오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였습니다.(요세푸스) 이 때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4:22)에 기록된 말씀을 보니 그는 40세 정도이고 그는 원래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있던 사람입니다. 미문의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지 알수없으나 성전 동쪽에 위치한 수산문으로 추측합니다. 이 문은 성전밖에서 이방인 뜰로 이어지는 문인데다가 베드로가 설교하는 장소인 솔로몬 행각(3:11)과 가까운 곳이었고 비둘기와 같은 제물들을 매매하는 시장과도 가까웠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을 수 밖에 없으니 구걸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에 무슨 일엔지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성전 문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자 여느 때와 상관없이 구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 합니다. 두 사도가 우리를 보라고 한 것은 어떤 것을 제공하려고 했던 것일 겁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봅니다. (4) 그런데 이 순간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한순간 기대를 가졌던 그 기대가 무너져 실망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선물은 항상 기대이상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대한 그 이상의 것을 선물로 받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함을 받을 것을 명령 한 것입니다.
사실 의사였던 누가의 시선에서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그야말로 걸을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그의 발과 발목에 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힘은 그를 뛰어 서서 걷게 하였고(8)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이사야 35장 5-6절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일입니다. “4b.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 치유 기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표현을 10절에 기록합니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누가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역사에 대한 반응을 잘 캡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놀람과 두려움을 통해 반드시 믿음이 일어나진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4:4)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첫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그 사랑을 실천하도록 걷지 못하는 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는 항상 거기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 그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의로운 것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주신 권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진짜로 나았습니다. 육체만 나은 것이 아니라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영적으로도 나은 것입니다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면 복음과 상관없는 사람이 복음의 능력을 가진 자로 변화됩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안에서 영육의 회복이 다시금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목하시는 것에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실 줄 믿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