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1-11절 강해 [하루말씀]

사도행전 5장 1-11절 강해 [하루말씀]

[성경말씀]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루말씀]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이며 전도 여행의 동행자였던 요셉 곧 바나바를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인 레위족속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 전후로 구브로 섬에 유대인들이 정착했습니다. 요셉은 사도들에 의해 바나바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습니다. 바나바는 ‘바’와 ‘나바’가 합쳐진 이름인데 나바(아람어)는 ‘화해, 또는 위안’이라는 이름의 뜻을 갖기도 하고 히브리어 나비는 예언하다 혹은 권면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행 11:23) 이런 의미에서 누가는 바나바를 ‘위로의 아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4:36)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사도들의 권한 아래에 두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밭 값을 사도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바나바가 사도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였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나바와 달리 5장 1절 부터의 내용은 반대의 내용을 기록합니다.

초대교회의 은혜의 모습에 급제동을 거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아나니나와 삽비라도 바나바처럼 자신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처럼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둡니다.(2) 그런데 바나바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2절에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감추었다는 표현은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물건을 감춘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용된 표현(동사)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책망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재산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을 사탄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이 일은 성령을 속인 일이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룟유다를 책망하실 때 그의 행동은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눅 22:3)

그리고 베드로는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라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이 계획을 이전부터 계획한 일입니다. 이 일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를 하나로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혼이 떠나니’라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은 사사기 4장에서 ‘시스라의 죽음’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부터 계획된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아나니아의 죽음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시체가 되어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6)

그런데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는 삽비라가 3시간 후에 베드로를 만납니다. 어떻게 배우자에게 이 일을 알리지도 않고 장사를 지낸 것일까요? 아나니아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죽은 죄인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에 의한 죽음은 애곡이나 어떤 동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나니아의 죽음은 죽음은 가족묘에 장사되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공동 묘지에 묻혔습니다.1옥스포드주석, 사도행전 1-7장, 411.

베드로가 삽비라도 책망합니다.

이렇게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는 삽비라에게 베드로가 책망합니다. 8절,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그러자 “예 이것뿐이라” 삽비라 역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합니다. 베드로에게 책망을 들으면서 ‘네 남편을 장사 하고 오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삽비라는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도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나 죽게 됩니다.

특히 10절에 보니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얼마는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의 발 앞에 자기 목숨의 전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교회는 세상모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속인 것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을 속이고
주의 영을 시험한 거짓말이었음을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들러내 보이기 위해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사실 헌신의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헌신은 교회에서 하는 행위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의로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