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46-60절 강해 [하루말씀]

사도행전 7장 46-60절 강해 [하루말씀]

[성경말씀]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하루말씀]

스데반은 광야의 성막에서 솔로몬 성전으로 설교의 초점을 옮깁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과거 다윗의 소원은 성전을 짓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사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스데반은 당시 다윗이 성전을 세우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 46절, 야곱의 자손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주님이 계실 곳을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백성들을 통해 영원히 주님이 예배 받으셔야 하며 또한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백성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전을 가리켜 ‘사람의 손으로 지은’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손으로 만든 우상을 묘사하던 말입니다. (사 12:12)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예루살렘성전도 우상숭배 장소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성전에서 예배 드렸다는 것에 만족하는 태도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사야 66:1)을 인용하며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전까지 스데반은 산헤드린 공회와 자신이 동족이라는 의미에서 우리 조상(7:1, 11) 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51절에 ‘너희 조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을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과 분리합니다. 스데반은 그런 자들에게 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회개 하지 않는 백성들을 가리켜 사용하던 말입니다. 1출 33:3-4; 34:9; 신 9:6; 10:16; 렘 3:3; 6:10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성령을 거슬렀던 것처럼 지금 산헤드린 공회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공회를 향해 선지자들을 번번이 거부하며 죽인 악인이라고 직설 했습니다. 52절, ”너희 조상들이 선자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스데반의 설교로 마음에 찔리므로 그들이 이를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서 계신다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스데반을 맞이하는 주님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스데반을 변호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던 때와 동일한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56절,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스데반이 보고 있는 장면을 소리로 표현하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쳤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주님을 성 밖으로 끌고 간 행동과 동일합니다. (눅 4:29)

그들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레 24:14)에 근거해 돌로 쳐 죽이기 위한 준비 작업인 것입니다. (렘 24:13-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스데반을 죽이려고 동참하는 자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둡니다. 이러한 행동은 앞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집과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아래 놓는 대목과 유사합니다. 그 발 아래 둔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책임과 권한을 옷을 맡은 사람이 맡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스데반을 죽이는데 핵심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사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마치 예수님처럼 죽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스데반도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소리쳤기 때문이고 스데반도 살인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요청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돌에 맞아 고통스러울 때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며 기도했고 자신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중보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서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스데반의 죽음과 같이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를 잃지 않으며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