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난제3] 마가복음 9장 6절 문구

[성경난제3] 마가복음 9장 6절 문구
[성경난제3] 마가복음 9장 6절 문구

[성경난제] 마가복음 9장 6절 문구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1. 현대성서주석, 마가복음, 250. 

마가복음 9:2-8의 언어는 주로 하나님의 현현에 관한 것이지만, 영광 중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환상은 묵시문학적이고 종말론적이다. 예수의 부활 직후에 복음서 기자와 독자들은 그 장면을 미래의 창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 본문이 하나님의 현현을 부활의 현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던지 모든 부분에서 감동은 동일하다. 이 구절의 언어는 지시적이라기 보다는 암시적이고 그 표현 방식도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다. 본문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용어로 영원한 영광에 대한 짧은 지각, 곧 파악하기 어려운 신적인 임재에 대한 놀라움을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서 신령한 분위기를 벗겨내고 제자들의 ‘거룩한 두려움'(9:6)을 지적인 혼동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대화의 주요한 방식과 감화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

2. 100주년기념성서주석, 마가복음, 416. 

제자들의 무서워함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무서움이 아니라 예수를 알지 못함에서 오는(불신앙에서 오는) 무서움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가는 베드로의 몰이해를 또 한번 보여준다. 그는 지금까지는 예수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할 인자의 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베드로는 성급하게 현재에 주저앉아 천국의 축복을 앞당겨 즐기겠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를 모르고 왕노릇부터 먼저 하려고 한다.

3. WBC성경주석, 마가복음(하), 164. 

복음서 기자의 해설은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자고 한 제안이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베드로도 이를 몰랐던 것은 아니고 단지 그가 방금 목격한 것에 놀라고 당황했을 뿐이다. 따라서 강조점은 베드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측근들조차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을 정도로 영화롭게 된 예수에게 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