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난제7] 요한복음 20장 22절 성령을 받으라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에 의한 난제는 세가지이다.
- 사도행전 2장이 본문의 해석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은 옳지만 이러한 해석들은 마치 사도행전 2장의 볼모로 잡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요한복에서 성령에 대한 약속은 예수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성령이 두번에 걸쳐서 왔다는 것은 예수께서 두번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다는 것을 시사한다.
- 성령과 보혜사, 사역을 위한 능력과 생명을 위한 능력 등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최근의 견해는 이 절이 요한의 오순절이라는 것. 즉 이것이 약속된 성령의 수여이며 이후에 있을 성령 수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안다고 해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제4복음서는 성령의 오심은 예수께서 영광을 얻는 것과 결부되어 있고 후자는 십자가의 “때”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요한의 신학에서 보면 이것은 “너희가 이제 성령을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수께서 숨을 내쉬었다는 것은 창세기 2:71(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과 에스겔 37:92(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주입”(insufflation)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자 죽은 자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감으로써 성령을 통한 그와의 새로운 관계를 열었다는 해석과 결합된다.
다시 요한의 신학에서 설명하면, 성령의 수여를 오순절에서 부활절로 당겨서, 암묵적으로 “승천이야기를 부활 서사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요구하였다. 즉, 이 기사는 연대기적이기 보다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령이 부활절에, 그리고 오순절에 이렇게 두번에 걸쳐서 수여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보완적인 설명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레(Theodore of Mopsuestia)의 의견에 따라 “나중에(오순절) 성령이 그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약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본문은 단지 “숨쉬었다” ‘에네퓌세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칠십인역에서 “숨을 내쉬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할 때 추가적인 단어들을 덧붙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사+대격 실명사)라는 구문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숨을 “들이마신 것”이 아니라, “내뱉었을 뿐”이시다. 그래서 이 절에서 가까운 영어 표현은 “insufflation”이다. 다만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이 반드시 그 자리에서 즉시 이루어지기 보다는 “성령을 받아야 함을 주입”하셨고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영광받으실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 출처 : DA카슨, 요한복음주석, 121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