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배경60] 성경 인물 스룹바벨
스룹바벨은 아카디안어로 ‘바빌론의 어린 가지’라는 의미이다.
그는 포로 후기 시기 다리오 1세 치하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으며(스 2:2), 학개와 스가랴 예언자들의 신탁 선포에 고무되어 대사제 예수아와 더불어 다리오 재위 2년, 520년에 성전 재건에 착수해서 515년 완공했다.
스룹바벨의 가계에 대하여 성서 전승은 스룹바벨을 모두 ‘스알디엘의 아들’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곳 역대상 3:19에서 스알디엘의 동생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브다야의 아들’로 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것을 역사가의 오류로 보기도 하고 다리오 시기 바빌론에서는 그러한 이름이 흔했기 때문에 다른 인물로 언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이 자식이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관습대로 브다야와의 씨받이 결혼을 통해서 생긴 아들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여호야긴 도판들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브다야가 출생했던 때는 여호야긴이 억류되어 있던 초기 였기 때문에 스룹바벨은 575년경 태어나서 538년 이후의 어느 시기에 귀국했을지도 모른다. 복음서 전승에서 스룹바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족보에 올라 있다(마 1:12; 눅 3:27)
스룹바벨은 유다에서 메시야 대망의 인물이었다(학 2:20-23).
학개 예언서에서 그는 야웨의 종, 선택받은 자 그리고 ‘인’으로 되어 있고, 스가랴에는 다윗의 후손인 ‘순’으로 언급되어 있다(3:8). 학개와 스가랴는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적 동요에 자극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고레스의 후계자였던 캄비세스가 죽고 522년 그 뒤를 이어 다리오 1세가 왕권을 잡은 시기에 국지적 분쟁이 소용돌이치자 그 떄를 유다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룹바벨 중심의 다윗 왕국 재건은 그 당대나 그 이후로도 결코 이뤄지지 않았따. 페르시아 제국은 더는 다윗 왕가의 후손들을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하지도 않았다. 에스라 6:14에서 성전을 완공했던 사람들의 명단에 스룹바벨은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반란이나 음모의 정치적 이유나 제국에 대한 위협적인 인물로 간주되어 페르시아에 의해 제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스룹바벨은 다리오 1세 세기에 활동한 인물이었다.
출처 : 창립 100주년기념 성서 주석(대한기독교서회) 에스라, 느혜미야, 9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