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장 28-32절 하루말씀

요한복음 18장 28-32절 하루말씀
요한복음 18장 28-32절 하루말씀

요한복음 18장 28-32절 하루말씀

[성경말씀]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하루말씀]

#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갑니다.

28절에 보니, 그들이 예수님을 심문한 내용은 전혀 없이 가야바에게서 총독 빌라도가 있는 관정으로 끌고 갔다고만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가야바와 예수님의 대화내용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다른 공관복음을 통해서 이미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판결과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제하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사도요한의 관심이 예수님의 심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17절과 25절에 기록된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 이유를 돌려 얘기하면 예수님이 죄인이심을 나름대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을 베드로가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23절, 예수님께서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지으신 죄를 부인하시는 것을 우리가 보며 베드로의 죄와 예수님의 죄를 분명히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유대지도자들이 이제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새벽즈음에 관정에 도착하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이방인의 관정에 들어가기를 꺼려합니다. 그 이유는 정결해야 하는 유월절을 앞두고 자기들이 이방인의 관정에서 더럽혀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들이 빌라도의 관정까지 온 이유는 사형의 책임을 외국인 점령자들에게 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직접 관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 빌라도는 종교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길 원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고소를 듣고 이것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지도자들은 30절에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말하면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에 대한 사형승인을 얻고자 합니다. 통상적으로, 유대인들은 자기 백성 중 어떤 사람이라도 이 나라를 정복하고 있는 침략자들에게 결코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내일이 유월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아침에 빌라도에게 달려왔다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1절, 후반절에 보니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하고 말합니다.

# 빌라도는 이 상황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유대지도자들의 시기심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예수님을 감옥에 넣는 것으로 만족하고 유대지도자들을 쫓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지도자들은 끈질기게 요구했고 자기들의 법에서 예수님을 처형할 이유를 이미 찾았다고 말합니다. (눅 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그래서 이제 유대인들에게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공적인 권한이 었었지만 이 지역을 다스리는 빌라도에게는 이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유대 절기와 정결의식을 지키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정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가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방인의 관저에 들어가지 않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삼상 17: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우리 마음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무척이나 잘 믿는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여기서 말하는 외식은 하나님앞에서의 가식적인 신앙입니다. ‘믿는 척’ 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열심히 드리는 예배, 열심히 부르짖기만 하는 기도회, 더 많이 드리는 헌금과 같은 거룩한 모습들이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그 뜻을 아는대로 아는 만큼우리의 인생에 그것을 실천하며 적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처럼 주님을 바라보는 온전한 순종이 될 때에 흙수저같은 우리의 인생이 구원을 받아 복된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은 성도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겉을 치장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살피시는 마음을 정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