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20~30절 하루말씀
요한복음 3장 20~30절 하루말씀
1. 성경본문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2. 하루말씀
사람의 거듭남은 ‘하나님께로 부터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즉, 이것은 옛사람을 버리고 성령을 통해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는 것으로 믿음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11절에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지도자들 가운데서 말씀을 보고 믿는 자도 있었지만, 믿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표적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14절은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들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14절 후반절,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놋뱀을 들어 올릴 때 이스라엘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된 것처럼 – 예수님께서 들려 올리실 때에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보고 믿을 때에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16절에 세상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한국말은 ‘세상’ 이 한단어로 표현되어서 의미가 분명하지 않지만, 원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몬’이라는 단어는 모든 ‘인류’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인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될 성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에가페센’은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에가페센이란 단어는 ‘영적인 사랑’이라는 ‘아가페’에서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품는 또 다른 의미에는 끝까지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의미 합니다.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기회를 주시며 그들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16절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17)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심겨져 있습니다. (요한 1서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또한 (겔 18:4)에는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의 영혼들 모두를 하나님이 놓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은 19절에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과거에 계속 죄를 지었으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절 말씀대로, 자기의 죄가 빛 때문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면 빛 되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빛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요한의 두 번째 증언(2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나오셔서 예루살렘 주변 유대땅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은 주로 세례를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4:1) 세례는 죄를 정결하게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니, 세례요한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세례와 세례요한의 세례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① 세례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몸을 정결이 해야 하는 준비단계의 세례였다면, ② 예수님의 세례는 이미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요한도 세례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죄를 고백하게 하고 몸을 정결케 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역할이 빛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26절에,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뭔가 예수님과 경쟁하는 투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요한이 비유를 하는데, 29절, 예수님을 ‘신랑’에, 자기자신은 그 신랑의 ‘친구’에, 그리고 백성은 ‘신부’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오는데 신랑의 친구가 당연히 기쁨에 충만하지 않겠느냐 그것처럼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다 말합니다. *그리고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시대는 끝나고 하나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당연히 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겸손의 모습으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3. 말씀적용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우리가 빛 된 자로써 해야 할 일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통치자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의 빛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