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0장 1-8절 1 [하루말씀] 창세기 30장 1-8절](https://bible2u.com/wp-content/uploads/2023/08/창세기.webp)
[하루말씀] 창세기 30장 1-8절
[성경말씀]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하루말씀]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지참금이 없었기 때문에 자처하여서 7년을 봉사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일하는것보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7년을 몇일같이 여길 정도로”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기록합니다. 하지만 약속한 기간이 되어 결혼할 때가 됐을 때 라반은 계획대로 어두워진 밤에 라헬이 아닌 레아를 방에 들여보냅니다. 이렇게함으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레아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빌미로 라반은 야곱이 칠년동안 더 무상봉사하기를 바랬습니다.
# 이 일로 야곱의 집안에 불행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불행의 원동력이 된 것은 29:30절에,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31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은 레아의 태는 열어두시되, 라헬의 태는 닫아 놓으신 것입니다.
특별히 레아는 이 때 4명의 아들을 출산합니다. 이 아들들을 통해서 레아의 절망적인 현실과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의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의 이름은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며 남편에 대한 바램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두번째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셋째의 이름은 레위입니다.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하나가 되길 원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넷째의 이름은 유다입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나를 끝까지 지켜주시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레아는 항상 라헬의 그늘에 가려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레아를 사랑해주심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하셨고 레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성장도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편의 사랑이 없이도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출산이 잠시 멈춰진 이유는 이 순간 만큼은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레아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 절망적인 라헬이 선택한 것
왜냐하면 레아는 야곱에게 남편으로써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면서도 아들을 잘 낳았지만 자기는 아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다” 말합니다.
* 그러자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생명의 출생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즘 불임이 많아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수술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하는 것 만큼은 신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라헬은 하나님의 영역을 하나님의 뜻안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경쟁심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우리가 이 라헬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려고 했던 사라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순전히 자기 생각으로 아들을 가지려했던 모습을 통해서 결국 하갈과의 문제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하갈을 통해 얻은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소망과 간절함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 라헬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라헬을 통해서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과 ‘기도’를 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이 선택한 방법은 야곱이 자기의 몸과 같은 몸종인 빌하에게로 들어가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양자로 삼아(내 무릎에 올려) 레아에게 나도 아들이 있다고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약 1:14-15)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빌하에게로 들어갑니다. 1혼인 입양(데릴사위)(30:3) 여종을 자신의 남편에게 주는 행위가 셈족 민족들의 문화에서는 일반적이었다. 혹자들은 라반이 딸들에게 이 여종들을 준 것은 혹시 있을 수 있는 딸의 불임에 대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윌리엄 라솔의 견해는 이 개념을 더 진전시키고 있다. “당시의 관습들을 근거로 판단할 때, 이것은 현재 혼인 입양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라반의 아들들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나중에 언급된다. 당대의 관습에 따르면 노년에 자신을 돌봐주고, 장자의 권리를 상속받으며, 가문과 가문의 전통을 이어줄 아들을 전혀 낳지 못한 사랑믄 혼인 입양 계약을 통해 자신의 딸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킬 수 있다. 그의 딸을 그 젊은이에게 주는 대신 그는 젊은이를 자신의 아들로 삼고 그에게 아들의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러한 결혼 문서에서는 후에 그 남자에게 친아들이 태어날 경우 그 아들이 장자의 권위를 갖게 되고 사위(양자로 채택한 아들)는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는 내용이 추가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야곱과 라반의 경우에 일어난 일이 이러한 것일 수 있다. 이는 후에 라반의 아들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라반이 권한이나 권리도 없이 야곱을 보내기 때문이다. (Main-idea, 창세기, p.353)
그런데 빌하가 임신하게 되었죠. 특별히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러자 이 아들에게 이름을 짓는데요. 빌하가 아닌 야곱도 아닌 라헬이 이름을 짓습니다. 이것은 빌하가 아들을 낳자마자 라헬이 자기의 양자로 삼았음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은 ‘단’입니다. 의미는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얼마후 빌하는 또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 둘째 아들도 양자로 입양하며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고 짓습니다.
# 닥쳐있는 문제를 앞에 두고 주님이 바라시는 것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인생속에서 때로 풀려지는 않는 문제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풀어내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를 알려줍니다.
레아의 인생은 자기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라반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혼했고 이 결혼생활마저 동생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인생이 계속되어집니다. 그러나 레아가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해서 그의 삶이 변화가 되는 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녀를 낳는 복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축복받지 못했던 레아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아리따운 라헬은 사람들에게 있어 관심의 대상이었고 남편에게도 축복받는 인생이었지만 태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라헬은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고 오히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임을 기억하시고 오즐도 주님안에서만 사는 우리 되길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