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0장 9-13절
[성경말씀]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하루말씀]
# 라헬을 향한 하나님의 결정
그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레아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얻어서 네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랑만 받았던 라헬은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29:31)에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지만 라헬은 자녀가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전적인 하나님의 결정이지만 이것은 주님을 향한 레아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한 조치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네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레아의 호소와 간구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4-5)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러나 반대로 라헬은 레아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라헬은 레아에게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이기적인 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긍휼함으로 레아를 바라보지 않고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도 인간적인 생각과 경쟁심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말합니다. 이러한 라헬의 잘못됨을 야곱이 화를 내면서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지금 라헬이 임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주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지금 라헬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라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니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이 시간에 자기 중심적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앞선 본문 (29:26절)부터 보면 라헬이 야곱과 함께 기다렸던 7년의 시간끝에 결국 이루어 낸 결혼은 내 자리가 아닌 언니 레아가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라헬에게 있어서 언니는 원수같은 존재가 됐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자리의 결정은 레아가 아니라 아버지 라반의 결정이라는 사실이죠.
이 결정에 따라 야곱은 또 다시 라헬을 위하여 7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29:30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감춰놓으신 은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이 말씀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라헬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결정이 한가지 있으신데요.
그것은 7년간 기다렸던 그 자리를 잃어버린 라헬을 위로하기 위해서 7년간의 집중적인 사랑을 더 받게 하셨다는 사실이죠.
# 하나님께서 택하신 레아와 라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루는 데 있어 레아와 라헬을 택하셨습니다. 두명다 언약의 상속자의 배우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다른 조건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레아는 인간적인 사랑은 없지만 자녀를 주심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해주셨고 라헬은 인간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으므로 자녀가 없는 상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들 모두에게 자녀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구는 자녀를 주고 누구는 자녀를 안줬다는 이 사실은 레아와 라헬을 영적인 사람으로 훈련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레아는 결국 이 네명의 아들을 통해서 위로함을 받아 당장 아들이 더 없어도 될 만큼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라헬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적인 시기심과 질투와 욕심이 많아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멀어지는 인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라헬이 선택한 것은 빌하를 이용한 대리만족이었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하기 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으로 비춰졌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단의 이름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아들을 주셨다 생각했고 납달리의 이름을 통해서 보면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라고 분풀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9절에 보니 레아가 더이상 라헬의 이러한 도발에 가만히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레아가 자기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첩으로 삼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라헬과 똑같은 모습으로 헛된 일에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결국 시종 실바를 통해 아들이 태어났고, 그 이름을 ‘복되도다 또는 행운이다’ 라는 의미로 ‘갓’이라 지어줬으며 둘째는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즉 흡족하다’라는 뜻으로 ‘아셀’이라 짓습니다.
결국 이 둘의 경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이 없게 되면 언제든지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히 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