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장 18절-32장 1절 인식일의 규례2 [하루말씀]

출애굽기 31장 18절-32장 1절 인식일의 규례2 [하루말씀]

[성경말씀]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하루말씀]

하나님께서 13절부터 안식일규례에 대해서 다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막이 지어지는 동안에 백성들도 함께 성막 짓는 일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성막은 백성들에 비해 규모가 한참 작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성막을 짓는 노동으로써의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 곧 거룩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서 13절,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말씀하시고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라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다라는 것은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의미하고 또한 주님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안에 사는 백성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있는 백성으로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룩함을 지켜내지 못하고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면 주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질서를 오히려 더럽히는 자가 되고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로 부터 버림을 받는 존재 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이러한 경각심을 심어 주고 성막이 세워지는 동안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주님 생각하며 또한 영적으로 깨어 있길 바라십니다. 이 영적인 일상생활을 지속함으로 인해서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며 마침내 7일째 안식 할 때에는 모든 백성들에게 합당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알게 됩니다.

# 18절부터는 시내산에 올라갔던 모세가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마치실 때에 친히 기록하신 증거판 두개를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 증거판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증거가 되어 백성들에게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32장 1절 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우상숭배에 대해서 백성들이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거룩을 지켜내야 합니다. 이 거룩을 지켜내므로서 주님과 상관있는 백성이 되고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될 백성들이 오히려 주님과 상관없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지쳤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살길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친 것이 아니라, 1절 후반절에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모세를 기다리다가 지쳐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40일이 가까운 기간동안 모세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 생각해왔던 모세가 없으니 그들에게 남는 것은 염려와 불안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정은 모세의 더딤을 보고 모여서 아론을 일으키려고 나아갔습니다.

여기서 ”일으키다“라는 단어는 ‘쿰’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여기서의 쿰은 내가 스스로 일어난다라는 개념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일으키다 일으켜 세우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달리다굼)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이 아론에게 나아간 것은 모세를 대신해서 누군가를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누구를 일으키려고 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1절에 기록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았습니다. 매일같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산에 가득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주시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40일의 기간은 그들에게 있어서 매우 큰 공백처럼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느끼기에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간 모세는 불가운데서 타버렸거나 혹은 우리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백성들이 결정한 것은 자기들의 공허함을 당장 만족해주고 자기들의 삶에 평안을 줄 것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주님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의 과거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교병을 통해서 과거에 지었던 누룩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여러신의 모양을 섬기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여호와 하나님같은 분을 신상으로 만들어 평안을 찾을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는 우리들을 위하여 자기들을 위하여 신상을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 곧 우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사람 이 문장을 다시금 원어대로 직역하면 ‘우리를 올라오게 한 그 사람’입니다. 백성들은 이 광야에서의 삶을 질적으로 낮은 삶이라 여겼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삶을 높은 삶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우리의 삶의 질을 점차 올라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 문장에서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확인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떠나므로 인해서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도 떠났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이 진짜로 믿고 신뢰했던 신은  자신들과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모세였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 하나님은 오직 백성들의 생명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십계명을 친히 써주시고 주님의 말씀과 임재가 그들가운데 있기를 바라시며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하는 일이라곤 인내하지 못하고 (기다리 못하고)언제든지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매일의 거룩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약속의 삶을 이어가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