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26장 23-33절 1 [하루말씀] 창세기 26장 23-33절](https://bible2u.com/wp-content/uploads/2023/08/창세기.webp)
[하루말씀] 창세기 26장 23-33절
[성경말씀]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하루말씀]
# 이삭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랄에 거주하면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 보다 더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사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이삭을 쫓아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16절에,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버지 아브라함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파고 그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르며 자기가 누구인지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랄의 목자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이삭의 것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샘물의 근원지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곳을 에섹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다툼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그랄사람들이 또 대항하니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다 싯나의 뜻은, ‘대적’하다 ‘반대’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삭은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이제 더 이상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르호봇이라 짓습니다. 르호봇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는 의미입니다.
#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23)
브엘세바에 도착하니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이삭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그랄에서 부터 ‘이삭’에게로 왔습니다. 여기서 그 친구 아훗삿은 단순히 아비멜렉의 친구가 아니라 왕의 조언가입니다. 그리고 군대장관 ‘비골’은 블레셋왕을 아비멜렉이라고 부르듯이 군대장관 비골이라고 통칭해서 부르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만났던 그 비골과는 다른 인물인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27절)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서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사실 그들이 온 이유는 옛날 자신의 전임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맺었던 동맹을 재차 확인하고 갱신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이방인들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에 대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지칭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을 믿어서라기 보다는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 살아계심을 그들과 함께 동행하심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져서 믿지 못하는 자들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역사가 있길 진심으로 소망 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동안 아비멜렉은 가해자였습니다.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이삭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맹세의 언약을 아비멜렉이 스스로 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은 사실상 죽음으로 이 계약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부가 되자 다시금 계약을 갱신하고 동맹관계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가운데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너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노라 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은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삭과 그 가족을 환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이 동맹협약을 통해서 이삭이 브엘세바에 안심하고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을 듣고 이삭은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평안히 보내었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고난 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다는 사실이 상기됩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으로 믿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2절에 보니,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화평을 이룬 그날. 종들이 팠던 우물에서 힘찬 물길이 솟아 오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늘 주님의 은혜안에서 화평하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방법은 우리를 늘 화평하게 만들죠. 그러나 주님 주신 방법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분쟁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이웃을 먼저 사랑하는 우리가 될 때에 주님이 모든 일에 화평함을 주신 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