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3장 13-17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33장 13-17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33장 13-17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33장 13-17절 강해

[성경말씀]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하루말씀]

# 야곱은 에서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에는 두려움과 미움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없었습니다. 그저 사랑과 위로와 용서와 평안함이 있을 뿐입니다. 사실 에서는 야곱에게 복수하려 했고 야곱은 이런 에서를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에서를 두려워하던 야곱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뚝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뚝심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자기만의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와 씨름하실 때의 그에게 있는 뚝심을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온전히 주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00명의 장정과 달려오는 에서가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에서의 마음을 돌릴만한 선물공세를 준비하지 않고 에서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일곱번 사죄의 절을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죄가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자기이름을 흔쾌히 말하며 또한 고백한 것을 통해 야곱의 죄를 이미 받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막 2:10)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죄를 용서해주심으로 자기의 씨름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2:12)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죽일려고 달려왔던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고 서로 울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임을 드러내게 하셨는데, 특별히 에서가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라고 물을 때에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될 수 없는 상황에 10절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라고 또 한번 강조합니다.

*이제 야곱의 일로 마음이 기뻐진 에서는 12절에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말합니다. 에서는 야곱과 함께 최종 목적지로 함께 가길 제안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절하죠.
왜냐하면 13절에 보니, 자식들은 연약하고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장거리 여행으로 특히 어린 것들이 너무 나도 지쳐있기 때문에 또 다시 강행군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 사실 야곱의 목적지는 세일이 아니라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시 에서를 속인 것은 아닙니다.  헤브론에 정착한 후 세일을 방문하겠다 한 것입니다. 그러자 15절에 에서가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말합니다. 이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호위를 해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자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내가 호위가 왜 필요합니까).  야곱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야곱의 호위는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야곱이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15절 끝에.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이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얻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형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더이상의 은혜는 과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불렀습니다.  여기 숙곳은 헤블론 근처가 아닙니다. 아직 집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 숙곳에서 멈춰서 집을 짓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그동안 썼던 이동식 장막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빠이트’라고 하는 고정식 장막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오래 머물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숙곳에서 장시간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 이유는 ‘자기를 위하여’라고 기록한 것에 맞추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있습니다.  아마도 에서 와의 화해가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인 것일 수 있고 20년 동안 일만했던 피곤했던 삶을 위해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거나 또 씨름으로 엉덩이를 다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오랜시간 멈춰있음으로 인해서  ‘자기를 위하여’ 육신의 휴식은 되었을지라도,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하셨던 그 말씀을 오랜시간 지체함으로 인해서  영적인 상태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34장에서 보면 딸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남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 말씀에 반드시 먼저 순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요한3서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하시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강건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믿음의 노력을 다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살아갈 때 범사에 잘되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