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출애굽기 2장 11-15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2장 11-15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2장 11-15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2장 11-15절 강해

[성경말씀]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하루말씀]

하나님께서 정하신 출애굽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점점 더 생육하고 번성하였고 애굽은 번성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며 점점 심하게 억압하였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에서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라는 어명까지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레위지파의 아므람이 요게벳과 함께 셋째 아이를 갖습니다. 이 태어난 아기를 보고 부모는 이 아기를 어떻게든 살리고자 합니다. 부모라서 당연하겠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2절에 보니 “그가 잘 생긴 것”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석달동안 어떻게든 키워냅니다. 그러나 석달이 되어서 더 숨길 수 없게 되니 갈대상자에 넣어 애굽의 공주가 정결의식을 치루는 나일강 주변에 있는 갈대 사이에 놓을 계획을 합니다. 갈대 상자를 나일강 물에 흘려보내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됩니다.1(출 2: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런 의미에서 이 계획은 요게벳이 아주 철저하게 준비한 계획입니다. 애굽 공주의 권위와 정결의식을 행하는 장소 같은 것들을 확인하고 공주가 동정심이 많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공주가 상자를 열어 아기를 볼 때에 이 아기에 대해 동정하는 탄식을 하죠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러자 미리암이 준비했다는 듯이 가서 히브리 유모를 내가 부르리이까 라고 담대히 얘기합니다.

그러자 공주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그것 뿐임을 알기에 공주의 권위와 보호 아래 아기를 평안히 키우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게벳에게 주신 지혜이며 불가능한 상황을 초월해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아기를 데려다가 요게벳이 젖을 먹이고 그 아기가 자라서 3살 정도 되었을 때 바로의 궁으로 들어갑니다. 이 아기가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라는 의미로” 모세라 칭해집니다.

# 이제 11절부터는 이 모세가 장성한 후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모세가 장성했습니다. ‘장성한’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됐으므로 높임과 존경을 받을 만큼 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 당시 그의 나이는 약40세입니다.  이것의 근거는 (행 7:22-23)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에 있습니다.특히 모세의 양모인 하셉수트는 이 당시의 사실상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어쩌면 바로 보다 더 높은 위치라 양자인 모세는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장성하게 되면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아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노동 하는 곳에 나갔다가 자기와 반대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극심한 노동과 학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어떤 애굽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에게 채찍질을 심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 장면은 바로가 세운 감독관이 히브리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히브리인이기도 하지만 3살 때부터 애굽인으로 살았으므로 그런 감정이 일어날 수 없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노가 차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 애굽인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모세가 먼저 한 일은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단숨에 그 애굽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리고 모래 속에 시체를 감춥니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그 곳에 나가봅니다. 원래 죄를 지은 범인은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다고 하는데 모세도 그 현장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같은 동족 또는 동포라는 개념은 굉장히 긴밀한 관계여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잘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같은 동포를 치냐” 말하면서 자기가 더 화를 냅니다. 그러자 14절에 그 사람이 말하길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현장에서 모세가 상관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상대하고 억압하는 사람은 바로의 감독관들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히브리인들 눈에 비치는 이 왕자 히브리인은 어떻게 보면 민족의 매국노처럼 여겨졌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묻었던 시체가 모세가 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이 모세에 의해서 히브리인들이 더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렇게 해서는 동족과 같은 마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동족과 같이 되려면 동족과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입장이 돼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인이 얘기합니다.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인들의 입장에서도 모세는 그져 살인자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즉시로 두려움에 빠집니다. “일이 탄로 났도다” 말하며 사람들을 피해 도망하고 또 게다가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일들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이시지만 언제든지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육적으로만 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