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출애굽기 4장 18-21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4장 18-21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4장 18-21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4장 18-21절 강해

[성경말씀]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하루말씀]

#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10절,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 7:22)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써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라고 증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1절에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원하시는 것은 모세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명령에 대한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의 모습은 오직 믿음과 순종입니다. 그래서 “이제 가라”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생각하는 자기에게 필요한 능력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또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나는 이 일에 적임자가 아닙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적임자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내가 사는 환경을 허락하시고 내 삶의 자리를 지키고 복음전도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입니다.

#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의 자리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시골에서 올라온 구레네 시몬에게 병사들이 억지로 예수님이 지시던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구레네 시몬의 삶의 자리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누구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삶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대신 산다면, 구레네 시몬이 더 이상 세상에 살 이유는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자리는 내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계속해서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모세에게 이제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그런데 모세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바라시는 것은 모세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이기 때문에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것은 형 아론과 함께 끝까지 사명을 완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에게는 입술의 능력을 주시고 모세에게는 지팡이 곧 주님의 권능의 손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애굽을 떠나 맨몸으로 온 자신을 받아주고 게다가 딸 십보라를 주고 40년이나 함께 살았던 장인 이드로에게 떠나겠다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첫 사명은 본토 아비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편한 자리 내 삶의 안식처를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안식처를 주님 나라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 모세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

모세는 떠나기로 했지만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살인자라는 명성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미디안에 여전히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이 응답을 듣고 20. 모세는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습니다. 이 지팡이는 더 이상 양을 칠 때 쓰는 지팡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깃든 지팡이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21절에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모세가 주님이 보여주신 이적을 행하더라도 바로는 그것을 믿고 백성을 보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일부러 악하게 만들었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로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마음도 완악하게 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악한 마음을 그대로 내어두십니다.

(롬 1:26)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하나님께서 악하고 죄많은 자들을 그대로 내어버리시는 이유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시기 위함이며 순리대로 살 것을 하나님께서 역리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악인들을 위해서 믿음있는 자들이 깨어 있길 바라시고 쓰임받길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늘 준비되길 바라고 ‘미천한 나’이지만 하나님께 쓰임에 기뻐하며 믿음으로 내 자리를 지켜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