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배경58] 부림절의 의미

[성경배경58] 부림절의 의미
[성경배경58] 부림절의 의미

[성경배경58] 부림절의 의미

에스더서 9:2-28에 따라 부림절은 유대인을 죽이려는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때에 총리인 하만의 유대인 몰살 계략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르드개에 의해 제정된 절기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부림절은 유대인들의 구원의 날이다.

# 부림절의 기원

대적을 물리친 유대인의 승리를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비록한 온 유다 민족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결정적 날을 심히 기뻐하며 어려운 역사 환경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격려하고 그 구원의 사실을 백성에게 전하고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하도록 부림절 제도를 세워 지키도록 한 규례가 오늘날 유대인들이 지키는 부림절의 기원이 된다.

푸림(부림:Purim)은 아카드어인 푸루(puru)에서 온 말로 제비뽑기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유대인을 살육할 날짜를 정하기 위해 하만이 제비뽑기를 한 것을 계기로 붙여진 이름이다(에 3:7).

하만이 제비뽑기에 의해 이 날을 유대인을 진멸하는 날로 정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제비뽑기를 주관하시어 그 날을 유대인에게 승리가 되는 날로 만드시고 대대로 지켜갈 승리와 감격의 절기로 세우셨다.

부림이 ‘제비뽑기’에서 온것은 이 당시에는 신들이 제비뽑기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있어진 풍습이었다. 원래는 ‘항아리, 단지'(Um) 혹은 ‘사발, 공기'(Bowl)를 의미했었기 때문에 그 제비를 거기에 던졌던 것 같다.

수메르 사람들은 나무 막대기를 제비로 사용했고 앗시리아 사람들도 이 푸루라 부르는 점토로 만든 주사위를 제비로 사용하여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제비를 뽑아 관리로 임용하기도 했다.
또한 돌로 만들어진 제비 두 개를 사용하여 양자택일의 신탁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런 제비뽑기 신탁은 아마도 비공식적 차원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비뽑기에 의한 신탁은 대부분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알아보기 위한 합법적 수단이었다.

제사장에 의한 우림과 둠밈에 의한 것이라든가 가나안 정복 후 일곱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와 요나 사건에서도 당연하게 제비뽑기가 시행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제비뽑기는 인간에 의한 것보다는 하나님에 의해 뽑혀 진다는 일반적 믿음이 있었다.

푸림을 히브리어 ‘푸라'(purah: 포도 자는 기구)와 연결시켜 설명하여 페르시아 시대에서보다도 그리스 시대로, 유대 역사의 시대에 일어난 축제로 가정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Pithoigia’ 혹은 ‘Opening the Wine Casks’라는 축제를 각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수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축제(a wine cask Opening Wine Casks)가 가을에 있었던 것이지 봄이 아니며, ‘purah’의 복수형도 ‘purim’이 아니라 ‘puroth’이기 때문이다.

한편 푸림은 던져진 제비 뿐만 아니라 제비뽑기로 할당된 몫이나 부여된 일도 의미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므로 부림은 민족적 구원을 기뻐하는 상징적 표로 자기가 가진 몫을 서로 교환하는 풍습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부림절은 아달월 14일에 축제로 지켜지고 하스모안 시대는 “모르드개의 날”로 알려졌었다(II Macc. 15:36). 유대월력 아달월 14일에 행해지는 절기이나 수산성의 유대인들은 아달월 15일에 그들의 구원을 축하하여 지켰기 때문에 이날이 수산의 부림절로 알려졌다(에 9:18).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부림절은 예루살렘에서는 15일에, 그리고 텔 아비브에서는 14일에 축제가 행해지고 있다. 윤년에는 부림절을 아달월 둘째 달에 행하고 있다. 아달월 13일은 에스더의 금식일이다. 이 절기는 유대인 절기 중에 작은 축제에 속하는 것이다.

출처 : 100주년 기념 주석(대한기독교서회), 에스더, 136-137

# 부림절의 풍습과 의식

부림절은 원래 시작부터 단지 기쁜 축제일에 지나지 않는 즐거운 날로 만들어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희락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야 했다(전 10:19).

그리고 이 날은 관용을 베푸는 날로 삼았는데 후에는 술 마시고 떠드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 이 잔치가 포식과 과음 그리고 매우 소란스러움 가운데 베풀어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림절에 모인 자들은 “하만은 저주를 받았고””모르드개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분간하지 못할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고 탈무드가 기록한다(Henry, 406).

그래서 부림절에는 성일의 분위기를 갖거나 영적 고양을 일으키도록 개발하는 특별한 의식이 없었다. 유대교 할렐을 부르고 불을 밝히는 등의 의식조차 없는 것이다. 단지 종교적 의식이라면 에스더서를 읽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에스더서 자체가 종교적 내용이 없고 신앙적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에스더서 저자는 완전히 이방인의 나라의 중심부인 궁정에서 조차도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것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고 평범한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구원의 사건을 이끌어 가심을 표현하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한다. 에스더서는 어떤 의식에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 섭리에 초점을 맺고 있다.

출처 : 창립 100주년기념 성서 주석(대한기독교서회) 에스더, 149-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