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2장 21-25절 강해

창세기 32장 21-25절
[하루말씀] 창세기 32장 21-25절

[하루말씀] 창세기 32장 21-25절

[성경말씀]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하루말씀]

*야곱은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를 누끄러뜨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원하는 것은 복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6절,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자신의 일행을 두 떼로 나눕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12절에,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에서를 향한 두려운 마음이 여전히 더 컸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방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 방법은 자기가 가진 소유 중에서 가장 좋은 가축들 580마리를 상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각각 세 떼로 나누어서 형 에서에게 보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예물의 행렬이 차례로 도착하게 해서
에서에게 계속 기쁨을 주고 싶었고 만약에 받지 않을 경우에는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 였습니다.

# 야곱은 종들을 보내고 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아들들을 데리고 얍복나루를 건너게 했습니다. 여기서 얍복나루로 번역된 이 단어는 배를 정박시키는 나루로 번역하기 보다는 사실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수심이 얕은 여울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목인들에게 배가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고 그 많은 소유물들을 배를 이용해서 건너편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죠.

야곱은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이 앞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실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노하우, 내 생각과 내 뜻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을 어떻게든지 벗어 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야곱이 아니라 지금 만큼은 염려와 근심 때문에 믿음이 잊혀진 야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가운데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는데요. 이 씨름은 매우 격렬한 몸싸움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온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면에서는 야곱을 찾으러온 에서의 첩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야곱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 사람과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싸움을 벌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 가운데 주님을 향한 간절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한 간절함 때문에 이 싸움은 새벽까지 지속되었습니다.

#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25절에 보니까.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버립니다. 이 내용으로만 보면 이 사람이 행한 일은 참 비겁하고 치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원어로 이해해보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의 본문에서 ’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나가’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원어적으로 ‘닿다’, ‘만지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때린 것이 아니라, 손을 데기만 한것, 단지 만지기만 했을 뿐인데, 마치 친 것처럼 엉덩이뼈가 어긋나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냐면, 인간의 무능함과 반대로 하나님의 전능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의 엉덩이뼈를 어긋나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 12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신 이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가진 힘으로 자기에게 닥쳐진 이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에서에게도 그랬고 지금 이 알 수 없는 사람과도 동일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상대로 버티고 있는 힘의 근원인 엉덩이 뼈를 부서뜨리시므로 버티고 있는 헛된 야곱의 믿음을 멈춰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야곱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구와 힘을 겨루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치신 이유는 야곱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불순종을 멈추시고자 그를 주님의 은혜로 구원하시고자 그를 멈추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 12:10-11)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를 멈추십니다.

제대로 믿지 못하고 믿음이 좌로나 우로나 방향을 잃어 어긋나있을 때 우리의 믿음을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때론 그 방법이 우리가 느끼기에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그 깨달음을 통해 영원히 평강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혹은 우리 이웃이 주님앞에 온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깨어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믿음으로 살며 본을 보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