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7장 12-19절 강해

창세기 37장 12-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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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말씀] 창세기 37장 12-19절 강해

[성경말씀]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하루말씀]

# 요셉이 두가지 신비한 꿈을 가족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들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갑자기 요셉의 단이 일어섰고 형들의 단이 빙둘러서더니 요셉에게 절을 했습니다. 두 번째 꿈은 부모를 상징하는 해와 달도 등장해서 요셉의 별에게 모두 절을 한 것입니다. 이 꿈이야기를 듣고 아버지 야곱은 매우 호통을 쳤고 형들은 요셉을 매우 싫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중요한 점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택하셔서 꿈을 보여주셨고 요셉의 입으로 가족들에게 나누게 하시고 이 꿈 이야기를 가족 모두가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계시입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요셉은 어린 아들이자 철없는 동생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외적인 시선으로만 요셉을 보니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멸시할 뿐입니다.

# 요셉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떼를 칩니다.(12)

세겜은 얼마 전에 야곱의 딸 디나 사건으로 멸망 당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야곱가족에 대한 그 지역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겜에 야곱의 아들들이 양을 치러 나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일에 요셉을 부릅니다.  13절,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요셉에게 있어서 세겜은 아주 먼 거리입니다. 헤브론부터 세겜까지의 거리는 약 100키로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결정은 자기를 싫어하는 형들 먼거리에 이르는 거리 또한 알지 못하는 갈길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져 형들을 위해서 또한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라고 순종합니다.

*요셉이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얼마간 갔을 까요 15절에 보니, 요셉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사람이 방황하는 요셉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요셉은 책임감과 성실함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의 명령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요셉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특별히 요셉을 찾은 사람이 요셉에게 호의적인 이유는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 일가는 아브라함 때부터 가나안에 계속 살아왔으며 최근에 세겜에서의 일들도 있어 꽤 유명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 일가가 가진 소유물들과 종들이 매우 많았고 요셉은 그 당시에 채색옷을 입었기 때문에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들이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라고 정보를 알려줍니다. 다행히 요셉이 있던 곳이 형들이 지나간 자리였던 것이었고 또 다행스러운 것은 이 사람이 형제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도단을 출발합니다.

# 요셉이 도단에 도착하고 멀리 있는 형들에게 나아갑니다.

형들이 멀리서 오는 동생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온 만큼 집에서 멀어진 만큼 아버지와 멀어진 만큼 동생을 죽이기로 공모합니다. 특별히 18절 끝에 ‘꾀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칼’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영적으로 악한 일을 꾀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가지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생각이 악하며 또한 주님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 먹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동생 요셉을 향하여 서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우리의 왕이 되는 꿈을 꾸는 자라는 조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보이신 계시는 요셉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보여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은 요셉의 꿈이 아니라 모두가 가져야 할 소망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육적인 자녀들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나중에 보여주실 때가 되서야 깨닫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든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보이시는 은혜를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인정하고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온전히 믿게 된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갈 길에 대한 확신의 응답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