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38장 12-23절 강해

창세기 38장 12-23절
창세기 38장 12-23절/span>

[하루말씀] 창세기 38장 12-23절 강해

[성경말씀]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하루말씀]

# 유다는 동생을 미디안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이유로 형제들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방인인 ‘히라’와 가까이 지냅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혼인을 하고 세아들을 낳았습니다. 첫번째는 엘이고, 두번째는, 오난이고, 세번째는 셀라입니다. 특별히 셀라를 낳을 때는 거짓의 도시라는 거십에서 살았습니다. 거십은 거짓의 도시인만큼 음란한 도시였습니다.그래서 유다는 아들을 음란에서 지키기 위해서 첫째 아들 엘에게 다말을 짝지어줍니다. 그런데 장자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 시대 풍습에 따라 첫째 아들의 명예를 위해서 둘째 아들이 다말에게서 기업 무를 자를 낳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형수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가 내 것이 안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도 죽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유다는 이렇게 아들들이 죽는 문제 이 불행이 며느리 다말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명령 앞에서 떠난 유다 자신에게 행하시는 징계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져 육적으로 생각하고 육적으로 판단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반드시 깨어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 12절에,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인 수아의 딸이 갑작스럽게 죽게 됩니다.

그래서 약 7일간 장례를 치루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은 후에 친구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습니다. 자기 양털깎는 자에게 이르렀다는 말은 유다가 양털깎는 행사에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유다가 이 곳에 왔음을 며느리 다말에게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말이 무얼 하냐면 14절에,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아있었습니다. 과부의 의복을 벗었다는 것은 과부가 입는 옷이 정해져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린다는 것은 ‘창녀’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특별히 다말은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아있었습니다.

딤나로 가는 길목인 에나임은 ‘두개의 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이라고 번역된 ‘페타흐’는 성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딤나는 성곽을 갖춘 상당한 규모의 성읍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 성읍의 출입구에 앉았다라는 것은 다말이 스스로 나는 단순히 정욕을 채우기 위한 창녀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읍의 출입구에 앉는 사람은 그 지역의 유지가 앉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말이 출입구에 앉았다라는 것은 한 가문에 속한 여자로써 가문의 대를 잇길 바라는 다말의 어떠한 의지를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14절 끝에 기록합니다.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나 이유가 어찌됐든 유다는 다말의 몸의 칭칭감은 의복을 보고 창녀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욕을 위해서 그 창녀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 창녀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이것은 유다가 가진 것이 지금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요구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말이 원하는 것은 유다의 신분을 `보증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내가 내 때에서 염소새끼를 주겠다 말합니다. 그러나 다말은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라고 말합니다. 다말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주 치밀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장과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달라고 합니다. 유다는 이 창녀가 며느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이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로 인해서 18절 끝에, 임신하였더라 기록합니다. 이렇게 유다는 일어나 제자리로 떠나가고 다말은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습니다.

*유다는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행한 일이 수치스러운 일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 히라에게 부탁해서 그 창녀에게 염소새끼를 보내고 그 창녀에게서 담보물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라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합니다. 특별히 히라는 유다가 만난 창녀를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간음하는 창녀는 히브리어로 ‘조나’라고 쓰지만, 이 문장에서는 ‘조나’라고 쓰지 않고 ‘케데솨’라고 쓰기 때문입니다. ‘케데솨’는 거룩하다, 구별하다라고 하는 카도쉬에서 유래하는 말입니다. 케데솨는 가나안인의 여신인 아스다롯을 섬기는 여사제들을 말합니다. 이 여자들의 임무는 음란한 행동으로 여신을 섬기는 입니다. 그러므로 히라가 생각하기에 가나안은 이러한 신전 소속의 창녀가 많았기 때문에
유다가 만난 창녀가 케데솨인 것으로 추측하고 그곳 사람들에게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케데솨가 어디있냐” 물었지만 사람들이 여기는 그런 케데솨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유다는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창녀에게 염소새끼를 보냈지만 그 염소새끼를 가지고 간 히라가 창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이에 대해서 히라가 증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히라에게 넘기는 행동입니다. 유다는 매우 음란했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삶속에 여전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계속 유다의 죄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유다의 음란함과 자기 밖에 모르는 죄를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유다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도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자범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것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셔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선한길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