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창세기 42장 18-25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42장 18-25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42장 18-25절 강해

[하루말씀] 창세기 42장 18-25절 강해

[성경말씀]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하루말씀]

7년 대흉년은 애굽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나라에도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이 기근은 야곱의 가족들이 있는 가나안땅에도 매우 심각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곡식을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아들들을 부리나케 애굽으로 보내게 됩니다. 2절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 열 명의 형제가 가족들을 위해서 400키로에 이르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긴 행렬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곳은 우연찮게도 애굽의 총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늘 같은 총리를 바라보지 못하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요셉은 엎드려 잘 하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엄한 소리로 9절,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말합니다. 총리의 이 명령은 정탐꾼으로 단정하고 너희를 죽이겠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형제들이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신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정탐꾼으로 단정한 이유는 죽음앞에서 자신을 향한 형들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다시 요셉이 말합니다. “아니라 너희는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러자 형제들이 자신들은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입니다. 요셉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은화를 받고 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말하고 바로 왕 앞에서 맹세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 맹세는 막내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의논을 하게 하기 위해서 3일을 구금합니다.

# 사흘 만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18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요셉의 이 말은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므로 너희의 생명을 위해서 두려워하라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형제들에게 쓴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엘로힘이 아닙니다. ‘하엘로힘’입니다. 엘로힘에 하(정관사 더)가 붙었습니다. (그 하나님)

요셉이 하나님을 엘로힘이라 말하지 않고, 하엘로힘 말한 이유는 보통 말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이렇게 하면 원래 믿었던 사람이 되기 떄문에 형들이 예전 요셉의 하나님 부르는 습관을 눈치챌까봐
누구나의 하나님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을 표현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또는 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을 아주 높이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이 볼 때 애굽의 총리가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신중의 신으로 인정해주고 너희는 이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말해줍니다.

요셉의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인해서 그의 생명이 항상 보전되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하나님앞에 신실한 자들이라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을 가지고 가서 1과거에 자신을 구덩이에 던져 굶어 죽게 하려다가 결국 자신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던 형제들에 대해(37:24) 오히려 자비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그들이 굶주릴 것을 염려하여 곡식을 가지고 가라고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달아라고 소리쳤던 인간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실 사랑의 행위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요일 4:7,8)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형들이 행해야 되는 일들은 사실 요셉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첫 명령입니다.

한 희생양이 여러 형제를 대신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여러 형제가 한 희생양을 위해서 800키로에 이르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이 명령속에서 형제들이 서로 이렇게 대화합니다. 21절,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러자 르우벤이 이렇게 말합니다. 22절,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라고 말합니다.
이 형제들의 대화를 요셉이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몰랐죠. 왜냐하면 그 가운데 통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23) 통역가는 말을 번역할 순 있어도 형제들의 감정은 옮겨주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형제들의 회개하는 마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앞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나를 위하여 내 가정을 위하여 현재의 문제를 더 먼저 바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사는 자들을 바른 곳으로 선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만 바라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언제든지 생명을 공급해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