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출애굽기 1장 15-22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1장 15-22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1장 15-22절 강해

[하루말씀] 출애굽기 1장 15-22절 강해

[성경말씀]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하루말씀]

#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70명이었습니다.

이 70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센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그래서 43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수로 늘어났습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고센땅에서 산지 115년이 지나면서 애굽이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시작했고 아예 민족 말살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로부터 235년이 지난 모세의 출생 때 부터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50장부터 출애굽 1장 까지의 시간적인 간격은 약 350년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소속되어 있던 정권은 셈족계열의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셈족계열의 힉소스라는 것은 결국 요셉이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6절에서도 기록 되었듯이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으면서“ 왕조도 물갈이를 합니다. 애굽의 순수혈통으로 이루어진 투트모스왕조가 힉소스왕조에 반역을 하면서 힉소스를 무너뜨리고 투트모스 왕조를 세웁니다. 그래서 이 당시에 애굽을 다스리는 왕은 트투모스 1세입니다. 그런데 투트모스 1세는 애굽 혈통이기 때문에 애굽 중심의 정책을 펴나갑니다. 이것을 국수주의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애굽에 들어와 있는 다른 이방인들이 계속 살려면 애굽을 위해서 쓰여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투트모스는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를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① 왕조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② 앞에 무너뜨렸던 힉소스 왕조는이스라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③ 게다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위협이 되었고 ④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고센 땅이 가나안과 애굽 경계에 위치했기 때문에 국경으로써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위협이 되는 이방인들이 하나가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세운 전략은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계획입니다. 그 명분은 10절에서 나오는 라암셋과 비돔의 국고성을 건축에 이스라엘을 투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관들을 세워서 더욱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주인이 누군인지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핍박을 당할 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1:12절에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갑니다. 이것을 이유로 14절에 그들의 생활을 더욱 괴롭게 하였다 기록합니다. 여기서 ‘괴롭다’라는 단어는 ‘마라’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마라는 이후 출애굽후에 나오는 ‘마라의 쓴물’에서도 나오듯이 원어 자체로는 ”쓰다“ ”괴롭다“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의미도 ‘이 쓰고, 괴로운 상태를 극복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되다. 독하게 됐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바로가 시행한 여러가지 정책 중 한가지에서 이 독함, 강하게 됨이 드러납니다. 15절에 보니,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부릅니다. 아마도 이들은 여러 산파들 중에 대표격인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16절,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 바로는 지금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아주 악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려냅니다. 산파들이 하나님보다 죽음이 더 두려웠다면 당연히 바로의 말대로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다시 산파들을 불러서 어찌 그러지 않았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말합니다. 이 말은 애굽여인들은 집에만 있지만 히브리 여인들은 다 중노동에 시달리니 건강해서 산파의 도움 없이도 능히 출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도 이 산파들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20절에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고 매우 강해집니다. 특별히 7절에서 말씀하는 번성과 이 20절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7절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강해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20절은 산파들이 주님 주신 지혜로 어린 생명의 목숨을 살림으로써 이스라엘의 수가 더욱 증가하고 백성이 강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살면서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할 때에 주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는 데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끼치고 본인도 복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로는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지 더 악한일을 자초합니다. 그래서 22절에, 아들이 태어나거든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바로가 왜 딸을 강조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요리와 자손을 생산할 수 있었고 힘이 약해서 반란의 위험이 적었고 얼마든지 애굽인들와 결혼시켜서 애굽인 만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애굽이 아무리 이스라엘을 괴롭힐지라도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더 강해지고 더 퍼져나간 것처럼 특별히 이 능력은 주님을 바라볼 때 생겨났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살길 바라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