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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지파를 비롯한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갔으나, 철병거와 경제적 유익을 이유로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불순종의 길을 선택합니다. 요셉 가문의 벧엘 정복 역시 하나님의 언약 원칙에서 벗어난 타협의 흔적을 남깁니다.
사사기 1장 22-33절(개역개정)
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 그가 성읍의 입구를 그들에게 보이므로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치되 그 사람과 그의 가족 전부를 놓아 보내매 26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곳의 이름이 되니라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 스불론이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음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중에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게 그 땅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가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이전에 이스라엘이 누렸던 승리를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유다 지파는 연전연승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속된 승리를 거듭하던 중, 남방 지역 아랏에 이르렀을 때, 종려나무가 많은 성읍, 곧 여리고 정복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를 정복하신 후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 6:20-21) 이 명령은 여리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리고 주변 성읍들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랏에 원래 거주하고 있던 아말렉 족속 가운데, 유다 지파와 함께 싸웠던 겐 족속이 더불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겐 족속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회심한 이후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부가 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한 겐 족속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여 주신 이유는, 이것이 겐 족속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공동체가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직후, 유다 연합군은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 곧 ‘파괴된 도시’라 기록합니다. 마치 자신들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실 때 주신 승리를 잊어버리고, 골짜기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철병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사실 이것은 불순종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과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쫓아내지 못한 것은 유다 지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1절의 베냐민 자손들도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므낫세 지파(27절), 에브라임 지파(29절), 스불론 지파(30절), 아셀 지파(31절), 납달리 지파(33절) 등 모든 지파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쫓아내지 못한 진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들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찾은 유익과 만족이란, 자기들의 손을 대신할 사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지파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노역을 시켰다”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정복한 이 땅을 잘 아는 사람들을 노예로 삼으면, 이 땅을 다스리는 데 훨씬 편리하고, 일손도 늘어나며, 경제적으로 부강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쫓아내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유다 지파의 정복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이어지는 순서는 다소 이상하게도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곧 요셉 가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짚어야 합니다. 유다와 요셉은 이스라엘의 장자권적 축복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유다는 형제들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고, 요셉에게는 두 배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이 차이점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된 사건이 그것입니다.
남유다의 핵심은 유다 지파이며, 북이스라엘의 핵심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사사기 1장만을 살펴보더라도, 사사기가 어느 시대에 기록되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는 다윗의 집안인 유다 지파를 매우 옹호하며, 유다 지파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요셉 가문을 유다의 경쟁 세력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유다에 예루살렘이 수도가 된 것처럼, 북이스라엘에 벧엘이 중심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요셉 가문이 벧엘을 어떻게 정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이 벧엘을 정복하는 과정은 마치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던 때를 연상케 합니다. 벧엘에 정탐꾼을 보내고, 벧엘 주민과 약속을 맺으며, 성읍을 정복한 후 그의 가족들을 살려줍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정탐꾼들과 라합의 이야기와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 이야기와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리고를 정복하던 그때는, 라합의 믿음의 고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라합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읍을 정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나안 사람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은 벧엘 정복 후 약속대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살려주는 것에 그쳤지만, 라합과 그 가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1라합의 구원은 단순한 거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수 2:11)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녀는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마 1:5).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살려 보낸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다는 사실입니다(25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라”(삿 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만일 돌아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이것이 너희의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엣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수 23:12-13)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말씀 앞에 진정으로 순종하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에만 진정한 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사기강해, 불순종, 가나안정복, 믿음의순종, 하루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