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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장의 지파별 전쟁은 유다 지파의 승리로 시작하지만, 단 자손의 초라한 실패로 마무리됩니다. 대부분의 지파들은 하나님의 명령 대신 자신들의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천사는 보김에서 심판을 선포합니다. 믿음과 순종만이 주님 나라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 본문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사사기 1장 34절 – 2장 5절(개역개정)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니 35 아모리 족속이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살기를 결심하였으나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 노역하는 자가 되었더라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위쪽 셀라에서부터였더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서 이르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더라 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보김이라 불렀더라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사사기 1장의 전반부는 마치 유다 지파의 업적을 기리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별히 유다 지파 갈렙의 믿음은 모든 지파의 모범이 되었고, 이러한 믿음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파들은 갈렙만큼 해내지 못했습니다. 갈렙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었던 반면, 갈렙을 제외한 사람들은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유다 지파는 주님의 명령을 잘 실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훗날 블레셋 족속이 되는 골짜기 주민들의 철 병거를 두려워하여 그곳을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파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유익을 위하여 자기 땅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사실상 내쫓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유다 지파와 대등한 요셉 지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과거 여리고를 점령할 때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유사해도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낸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뜻을, 이방인이지만 믿음의 사람인 라합을 통해 알게 하신 사건입니다. 둘째, 벧엘에 정탐꾼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단지 벧엘을 침투하고 점령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어떠한 조약도 관계도 맺지 말라 하셨으나, 그들이 택한 방법은 주님의 말씀대로 전투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벧엘 사람과 약속을 맺고 은밀히 진행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26절에서,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무너진 벧엘을 다시 건축하였으며, 이는 곧 다시 우상을 세운 것을 의미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지혜를 구하며 순종을 실행한 사람에게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34절에 이르러, 유다 지파의 당당한 승리로 시작한 지파별 전쟁은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 자손의 이야기에서 너무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보다는 이방인들을 흡수하여 더불어 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기업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역전의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삶을 축복의 자리에서 저주의 자리로 뒤바꾸어 버리신다는 사실입니다. 달란트 비유처럼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되어,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이 더 강성한 요셉 족속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1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에서 주님은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종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순종과 충성 없이는 주어진 은혜마저 상실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35절 끝에서 요셉이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노역만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이러한 방식의 가나안 정착을 성공적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거주할 땅을 갖게 되었고, 많은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주님 나라에서 사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스스로가 만들어 낸 방식일 뿐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2:1-2)
보김은 이 본문에서만 언급되는 지역입니다. 특별히 보김은 ‘통곡의 장소’로 번역되는 만큼,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어야 할 벧엘이 루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진 바로 그 자리임을 주목해야 합니다.2벧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이름인 루스로 재건된 이 도시는 이미 그 본래의 거룩한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삿 1:26 참조).
그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세 가지 심판을 선포하십니다(3절). 첫째, 더 이상 그들을 주신 땅에서 쫓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그것들이 그들의 옆구리에 박힌 가시가 될 것입니다. 셋째, 그들의 신들이 올무가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축복이 임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통곡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도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통곡을 용서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의 울음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그저 신세 한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철저한 회개와 주님 앞에 신실한 결단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말씀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동일한 모습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바로 믿음과 순종으로만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나라에서 사는 방법임을 결코 잊지 마시고, 오늘도 주님께 순종함으로 축복받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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