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브올 산의 기적

모압 왕 발락은 세 번째 시도로 발람을 브올 산으로 데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발람의 눈을 열어 광야에 진 친 이스라엘을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으로 보게 하시고, 저주 대신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성경말씀]

민수기 23:27-24:9(개역개정)

27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29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제단을 쌓고 여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30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1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게 하더니 2 발람이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거주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매 3 그가 예언을 전하여 이르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7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8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관통하리로다 9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하루말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발람의 입을 막으시고, 오히려 그 입을 선한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입이 아니라 축복의 입술이 되게 하셨고, 세상 속에서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이 주술사 발람을 부른 것은 어떠한 종교적 이유나 신앙적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엄청난 숫자를 줄이기 위해, 이스라엘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신의 말을 전하는 ‘신탁(神託)’을 담당하던 발람을 초청하게 되었고,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얼마든지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 착각 위에서 발락은 발람에게 돈과 재물을 제공하였고, 발람은 그 착각을 이용하여 재물을 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아니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행동을 주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발람의 입술, 발람의 의지, 발람의 행동들, 발람의 잘못된 생각들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만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말씀에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나라를 보호하는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발락, 세 번째 시도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쓴 만큼 유익과 만족이 있어야 했고, 최소한 손해는 없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에게서 어떻게든 효과를 얻어내야 했습니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한 세 번째 시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27절,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고 하며,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로 발람을 데려갔습니다.

여기서 발락은 또다시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을 드러냅니다. 첫 번째로는 발람이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숫자 때문에 축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로는 저주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전히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저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브올 산으로 장소를 옮기면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요, 인간적인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1발락의 반복적인 시도는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계획이나 장소, 방법에 의해 좌우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장소를 바꾼다고 하나님의 뜻이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러한 자기중심적 생각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이렇게 행동하면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지’, ‘중요한 순간에만 주님을 찾으면 내 뜻을 알아주시겠지’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기 생각의 늪에서 속히 빠져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눈으로 바라보다

어쨌든 발락과 발람은 브올 산 꼭대기에 올라 다시 한번 일곱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24장 1절에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게 하더니”라고 기록합니다. 앞선 두 번까지는 발람이 주술적인 방법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지만,2점술(占術)은 고대 근동에서 징조를 통해 신의 계시를 알고자 했던 방법입니다. 발람은 이방 세계에서 이러한 관습에 익숙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과 무관하게 당신의 말씀을 직접 임하게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주술을 위해 구별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의 눈이 바라본 곳은 광야였습니다. 황량하게 펼쳐진 메마른 광야, 그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 광야를 바라보며 예언하고 있는 발람의 눈에 그 땅이 허허벌판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으로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5절)라는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땅과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는 땅은 다릅니다. 인간의 귀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주신 들을 귀로 듣는 주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어려움과 아픔이 찾아올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나라 안에 살고 있으므로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민수기 강해, 발람과 발락, 하나님의 주권, 축복의 선포, 믿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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