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문 앞에서 우는 백성과 탄식하는 모세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에 싫증을 느끼며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백성의 울음 앞에서 모세마저 탄식하며 하나님께 원망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만 바라볼 때 믿음은 흔들리고, 지도자조차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말씀]
민 11:10-15(개역개정)
10 모세가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들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우는 것을 여호와께서 들으시니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으로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지 못하오며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의 짐을 내게 맡기셨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낳았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내게 그들의 아버지가 젖 먹이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이 모든 백성을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나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니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루말씀]
만나를 향한 불평, 그리고 가라지들의 영향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온 이후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만나만 먹는 것이 몹시 지겨워졌습니다. 그리하여 과거 애굽에서 먹었던 것들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불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인종’은 단순한 혼혈이나 이방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게 만드는 가라지들을 의미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3,000명이나 되는 가라지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의 예배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불평과 불만의 말을 품습니다. 둘째,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읍니다. 셋째,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잘 믿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에 민수기 1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 진영 끝을 사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 옛 사람으로 돌아간 백성
하나님은 왜 그들의 모습에 진노하셨을까요? (엡 4:21-25)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시내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훈련받은 것은 바로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듭나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그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 사람으로서 참된 것을 말하지 않고,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 거짓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정말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매일, 매주 주시는 이 말씀밖에 없어 보입니까? 이것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만을 기대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이런 신앙은 쉽게 시험에 들고, 쉽게 불신앙에 빠지고 맙니다.
현실만 바라본 백성, 그리고 모세의 탄식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민수기 11장 10절에서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울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현주소였고, 어쩌면 우리 믿음의 현주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믿음을 가져보라고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울기만 하고 불평과 불만만 드러냈을 뿐, 믿음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고, 하나님을 능력 없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민수기 11장 10절에서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기쁘지 않았다기보다, 그가 처한 상황이 감당하기 곤란한 지경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모세는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십니까”라고 원망합니다. 12절에서는 “이 모든 것을 내가 배었나이까”라고 말하며, 이들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있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과 임무를 외면하고 회피합니다.1모세의 이 고백은 지도자가 백성의 불신앙 앞에서 얼마나 쉽게 영적 탈진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동시에 이는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모세는 이렇게까지 고백합니다. 13절,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에서 얻으리이까.” 14절, “이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절,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백성이나 지도자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에 대하여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단순히 바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두드리는 자에게 반드시 열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간절히 원하는 것, 내 능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 현실을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억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오늘도 감사와 영광이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민수기11장, 광야의불평, 믿음의실천, 하나님을바라봄, 모세의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