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 사이에서

바울은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성찬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거룩한 교제임을 강조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므로, 주님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음을 선언하며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촉구합니다.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개역개정)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러면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하루말씀]

우상숭배의 위험성

오늘 바울은 우상숭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지적합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출신으로서 율법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십계명의 제일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말씀처럼,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명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계명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의 일부 성도들을 위험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강한 믿음의 사람이라 자부하였는데, 그 근거는 자신들이 이미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았으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앞서 우상이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제물 역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믿음을 연약한 자들 앞에서 과시하며 우상의 제물을 무분별하게 먹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약한 이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1출애굽기 20장 7절(개역개정)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지혜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들을 귀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찬의 깊은 의미

이제 바울은 성찬의 깊은 의미를 강조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하여 축복의 잔을 받는 것은 속죄 제사로서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사건에 동참하며 우리도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된 몸으로서 주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한 몸이요 한 교회입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17절) 또한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18절)고 말씀합니다.

18절에서 제물을 먹는 자들은 주로 제사장들을 가리키며, 특별히 화목제를 드릴 때에는 제물을 바친 자와 제사장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린 제사의 제물은 모든 참여자가 함께 떡을 먹으며 교제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드리는 성찬은 사실상 구약 시대부터 이미 이루어져 오던 것입니다.

무분별한 행동이 부르는 위험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일부 교인들은 한 몸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믿음이 강한 자들만이 진정한 신자인 양 우월의식을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자랑하려 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분별한 행동이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고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방인들이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는 것은 우상 뒤에 있는 귀신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우상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뒤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 음식을 먹는 것은 실상 귀신과 친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21절)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베푸시는 성찬을 통해 하나님과 긴밀히 교제합니다. 그런데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동시에 악한 사탄 마귀와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럼에도 만약 자기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22절)고 묻습니다. 새번역으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주님을 질투하게 하려는 것입니까?”라고 번역됩니다. 주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만약 사탄과 교제하다가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버리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모든 복락과 은혜를 잃어버리고 마치 불신자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빠질 올무를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장 30절)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오늘도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10장, 우상숭배, 성찬, 귀신의식탁, 주님과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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