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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영적인 관점에서 응답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자체가 그리스도의 편지요, 살아 있는 추천서임을 밝히며, 복음의 직분이 율법의 직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것임을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11절(개역개정)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떤 사람처럼 너희에게나 혹은 너희에게서 남에게로 보내는 추천서가 필요하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이 점에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없어졌느니라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안에 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직에 대해 분명히 밝혀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며, 1절에서 자신을 추천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추천서란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을 소개하고 신뢰를 보증하는 글입니다. 당시 교회들은 거짓 선생들로 인한 혼란 때문에 추천서를 요구하는 관행이 생겼고, 심지어 이 추천서를 위조하는 이들까지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사도로 공인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가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영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지닌 추천서가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차분히 설명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2절)고 선언하며, 고린도교회 성도들 자체가 바로 자신의 추천서라고 말합니다.
이 서신의 수신자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인 만큼, 이 추천서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3절).
따라서 이 복음의 선포를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고백하게 된 것은, 결국 바울의 사역을 통해 그들이 영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다시 말해, 이 편지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께서 직접 써 주신 추천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영적 변화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5절)고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기에 충분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역자로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생명을 일으키시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복음 전하는 자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16절에서 바울은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밝히며, 새 언약의 직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과거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돌판에 문자로 새긴 율법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서 발하는, 곧 사라질 영광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렸습니다(7절). 그렇다면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8절)는 바울의 반문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모세의 직분을 ‘정죄의 직분’으로, 사도의 직분을 ‘의의 직분’으로 구분합니다(9절). 모세의 직분을 정죄의 직분이라고 한 까닭은 율법이 죄인을 정죄하기 때문이며, 의의 직분은 성령께서 사역자를 통해 죄인을 의롭게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 매여 죄인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함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본받고,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특별히 복음은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것이기에, 우리의 직분 또한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직분을 받아 교회에서 섬기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추천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