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내주와 하나님의 자녀 신분
바울은 성령의 내주 여부로 참된 그리스도인을 판별하며, 성령을 따라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은 자는 종이 아닌 자녀로서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며, 그 신분에 걸맞은 책임과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성경말씀]
로마서 8:9-17(개역개정)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의무가 없느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루말씀]
성령의 내주가 그리스도인의 기준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거하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성령의 내주 여부에 따라 참된 그리스도인을 판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므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1여기서 ‘생령(生靈)’은 히브리어 ‘네페쉬 하야’로,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이 생령은 하나님과 같은 호흡을 나누는 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죽는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의로 말미암아 사는 영적인 사람입니다(9-10절).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도 살리실 것을 약속하십니다(11절).
우리는 영신에게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믿음의 수준에서 벗어나 성령 충만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이기는 방법은 성령을 따르는 것뿐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반드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백성의 특징은 더 이상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빚진 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2‘빚진 자'(헬라어: 오페일레타이)는 채무자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도덕적·영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육신이 아닌 성령께 빚진 자임을 역설합니다.
우리가 영의 일을 저버리고 죽을 몸만을 위해 산다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이 구원받을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빚은 책임과 의무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함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주님과 같은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특별히 14절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신분이 무엇이든, 지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특히 자녀는 종과 다릅니다. 자녀와 종의 결정적인 차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녀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아버지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3‘아빠'(Abba)는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셨으며(막 14:36), 바울은 성령 안에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을 부를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뜻하며, 자녀로서 아버지의 것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도 자녀로서 함께 감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자녀로서,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는 종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을 쏟으며 고난 중에도 담대히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8장, 하나님의자녀, 성령내주, 성령충만, 양자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