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 롯이 낳은 모압과 암몬 [Q&A4]

창세기 19장 롯이 낳은 모압과 암몬 [Q&A4]

[ 창세기 19장 강해설교를 통한 질문입니다. ]

Q. 질문

1) 롯과 두 딸의 동침으로 모압의 조상과 암몬자손의 조상이 되었다. 이 죄악을 그냥 보고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2) 모압 또는 암몬인으로 성경에 이름을 남긴자가 있는가?

A. 답변

1) 롯의 근친의 결과를 그냥 보고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오늘 창세기 19장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의 죄를 절대로 외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짓지 말라고 한 죄를 구태여 짓고 나서 하나님께서 왜 이런 죄를 짓게 하셨는가 하는 질문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처음부터 간과한 결과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보면, 롯이 죄를 짓게 될 것을 걱정하신 하나님께서 (19:15)에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염려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16절, “롯이 지체하매”,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는 자비를 더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17절,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럼에도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소알성을 가기로 고집하다가, 산으로, 동굴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가볍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안에서 생각하고 주님이 기대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시고 그 축복의 말씀을 받아 누리길 바라십니다. 그러나 죄짓는 사람들은 항상 주님을 이렇게 원망합니다. “왜 하나님은 죄 짓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죄 짓는 자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주님의 열심과 선하신 뜻을 외면한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죄’가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 모압 또는 암몬인으로 성경에 이름을 남긴자가 있는가?

>> 이 사건 이후로 모압과 암몬은 이방족속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방인이 되었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할 자’ 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신이듯이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도 주님의 유일한 백성이길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을 이스라엘이라고 칭하고 있죠. 이스라엘은 지역적으로는 팔레스타인에 위치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지칭하시는 이스라엘은 야곱의 이름으로 태동된 영적인 의미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창 35:10-15)

따라서 하나님은 유독 이스라엘을 통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앞에서 나누었듯이 믿음의 유산은 아담과 하와의 세번째 자손인 셋에서 출발합니다. 다 같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롯이 낳은 모압과 암몬족속은 이 때부터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하나님이 경멸하는 족속이 됩니다.

(열왕기상 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이 말씀은 모압과 암몬의 자손이 가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고대시대의 수많은 종교 중에 특히 모압과 암몬의 그모스신과 몰록은 자신들의 자녀를 불에 태우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완전히 반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여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신론 또는 범신론을 믿습니다. 다신론은 여러 신을 믿는 사람을, 범신론은 모든 신은 하나로 통한다라는 주장을 하지요. 이러한 신론은 여전히 우리주변에도 많이 갖고 있지만, 수천년전에는 어땠을까요? 수많은 “다신”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까요.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 입다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실상 그는 다신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이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입다는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약속으로 이 일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그모스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모압여자 룻도 사실상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구원받은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여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룻은 모압인으로써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난’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관점이라면 우리 전부가 개천에서 용난 사람이겠죠. 룻의 믿음에는 전적으로 시어머니 나오미의 영향이 있었고 나오미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구원자로 생각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믿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같이 있던 또 다른 며느리 오르바는 자기 신을 찾아 갔기 때문입니다.(룻1:15)

*성경에는 두가지 이름의 유형이 기록됩니다.
– 첫번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으로써
– 두번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인으로써
– 의인은 길게 기록되지만 악인은 짧게 기록되거나 아예 쓰이지도 않습니다.

암몬과 모압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할 자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계 20:13-15)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