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니다 —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 사도행전 19:13-22 하루말씀

예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니다 —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말씀]

사도행전 19:13-22(개역개정)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섬기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하루말씀]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낸 자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용하셔서 치유의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 능력은 병든 사람뿐만 아니라 악귀도 물러가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사용하려는 무리가 나타납니다. 당시 마술사들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병을 고치고 마귀를 내쫓는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주문을 외우며 온갖 신들의 이름을 불렀는데, 바울의 능력에 견주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까지 사용하기에 이릅니다(13절).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마술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며 바울의 사역을 흉내 냈습니다. 14절을 보면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주문처럼 반복한다고 해서 모두가 능력을 받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임을 온전히 믿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마술사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역사를 일으키려 했지만, 이 능력은 주님께 택함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아무 능력도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악령이 드러낸 수치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악령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그 악령은 예수님과 바울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대답합니다(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였습니다. 그리고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쳤다고 기록합니다(16절).

악령은 그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드러내며 수치를 폭로하였습니다. 믿음 없는 자들이 심판 날 하나님 앞에 드러낼 것은 수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1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에베소의 회개와 말씀의 흥왕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미신에 젖어 있던 에베소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역사로 말미암아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참 신으로 인정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회개하였습니다(17절).

그리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마술 서적들을 모아 공개적으로 불태웠습니다. 주술하는 방법을 담은 파피루스가 든 작은 원통이나 부적을 담은 통들이 실제로 에베소에서 발굴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마술에 관한 비법이 에베소에서 흔했기 때문에 ‘에베소의 글’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2생명의삶, 사도행전, 241. 19절에는 주술 관련 서적들의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당시 은전 하나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니, 에베소가 얼마나 미신에 깊이 물든 도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기록합니다(20절). 믿는 자들의 수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인도하심

이 일 후에 바울의 나머지 사역이 기록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20:1-2)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21:15-38), 마지막으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고 다짐합니다(28:14-16).

왜 바울은 로마에 가고자 했을까요? 바울이 가는 곳마다 로마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말의 의지는, 그 영향력과 권세가 나오는 로마의 핵심부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특히 21절의 헬라어 원문에는 ‘엔 토 프뉴마티’, 곧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의역되어 빠졌지만, 이는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이 바울의 자발적인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주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주님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