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 네 파벌의 분쟁과 복음의 능력 |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하루말씀

고린도교회 네 파벌의 분쟁과 복음의 능력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 소식을 듣고 깊이 염려합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뉜 네 파벌의 분쟁을 직면하며,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만이 교회를 하나로 묶는 능력임을 선포합니다.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장 10-17절(개역개정)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루말씀]

바울은 글로에의 권속들로부터 고린도교회에 심각한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11절). 그 염려가 10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바울은 그들에게 ‘같은 말’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단 사설이나 왜곡된 말을 하지 말고, 참된 복음과 진리만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분쟁하지 말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어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간에 마음이 갈라지고 뜻이 다르면 분쟁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빠른 시간 안에 연합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네 파벌

고린도교회에는 네 개의 파벌이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그것입니다.

바울파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헬라 철학 사상에 거부감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바울이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볼로파는 바울파와 달리 학문적 성향이 강하여 지식과 언변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게바파의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 이름으로, 곧 베드로파를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보자기 환상을 거부했듯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파는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의 교훈보다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 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집중하기보다, 주님의 영이 자신들과 함께함으로써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오늘날의 이른바 ‘구원파’적인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1100주년기념주석, 고린도전서, 96.

바울파를 향한 바울의 반문

특히 바울은 바울파를 향해 반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13절)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이며, 나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보는 고린도의 회당장으로 이 지역의 첫 회심자 중 한 명이었고(행 18:8), 가이오는 고린도교회를 위해 자신의 집을 예배처로 내어준 사람입니다(롬 16:23). 바울이 실제로 세례를 베푼 사람은 이들을 포함하여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만일 더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을 근거로 바울이 추앙받았을 것이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7절)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도 아볼로파가 주장하는 철학과 수사학, 곧 말의 지혜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복음의 능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세상의 지혜를 더 가치 있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분쟁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복음 외의 것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행하는 것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할 뿐 아니라, 세상 가운데 머물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오직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고, 복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능력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임을 믿으시고, 오늘도 복음만을 붙잡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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