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락의 회유와 발람의 선택, 하나님의 주권
발락은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내어 발람을 회유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입을 막아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지위와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발람의 모습을 통해, 주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삶만이 진정한 복의 길임을 교훈합니다.
[성경말씀]
민 22:15-20(개역개정)
15 발락이 다시 고관들을 이전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높은 사람으로 보내매 16 그들이 발람에게 이르러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이 청하건대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라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나이다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시니라
[하루말씀]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불려 나온 발람
모압 장로들이 미디안 장로들의 인도를 받아 발람을 초청하러 길을 떠납니다. 발람에게 도착한 그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민 22:8) 발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른 신들과 신접하던 방식 그대로 이렇게 말한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부정한 자에게 친히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지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물으십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은 “이 사람들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인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보낸 자들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첫째는 그들과 함께 가지 말 것이요, 둘째는 그들이 의뢰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13절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 장로들에게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발락의 장로들이 보기에 발람은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장로들은 결국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낸 발락의 회유
이 일 이후에 발락은 처음에 보냈던 장로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보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이 발람에게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발람의 거절을 막기 위해 지도층 인사들을 보내고, 16절에서는 “청하건대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고 전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신이 대적한다 할지라도 그 뜻을 거역하고 나아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거절하거나 거부하거나 거역하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발락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발락은 자신의 손을 거부하는 것이 더 큰 죄라고 말합니다. 17절에서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라”고 하며, 발람에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막대한 재산을 제안합니다. 세상의 손을 뿌리치는 것이 신을 대적하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 4:18)는 사실입니다.1고린도후서 4장 18절은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대비시키는 핵심 구절로, 일시적인 것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것에 시선을 고정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발람의 입을 막으신 하나님
그런데 발람은 이 제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8절,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 발람이 제안을 수락하려는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것이 진정 복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약 3:3)2야고보서 3장 3절은 혀와 말을 다스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을 막으신 것은 이 원리의 실제적인 적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막으시기도 하고,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더 나아가지 말고 멈추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복된 길이 시작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 생각을 더한 발람
그런데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덜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뜻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주님께서 분명히 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지위와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러한 발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20) 우리가 가는 가장 복된 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발람은 다른 길을 가려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에게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일으키시는 역사 속에서 의인과 불의한 악인을 모두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람이 처음에는 죄인이요 부정한 자였을지라도, 주님께서 의인으로 사용하시려 할 때 끝까지 아멘으로 순종하였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축복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 다른 것을 선택함으로써 본색이 드러나고, 결국 불의한 자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심판 앞에서, 끝까지 불순종하며 불의한 길을 걷는 자들의 손은 주님께서 놓아버리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선택하는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요,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기회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붙잡을 때 축복이 임하고, 주님이 내미신 손이 아닌 세상의 손을 붙잡게 되면 결국 멸망의 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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