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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도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재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회에서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헬라 문화 속 철학자들과 구별되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아무런 장애가 없게 하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12절(개역개정)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생업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뜻을 따라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앞선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제사 제물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과 믿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과 믿음을 아직 갖지 못한 연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8장 13절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오늘 9장에서도 자신이 사도로서 여러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복음 전파에 지장이 없도록 그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논조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본보기로 제시하며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바울이 자신을 이렇게 드러낸 이유는 교회 안에서 그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1고린도전서 15장 8-11절 참조. 바울은 자신이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이나 주의 은혜로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니”라며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합니다.
바울을 비판했던 자들은 지식을 자랑하며 약한 자들을 무시했던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린도후서 10장 12절에서 말하듯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는’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4절에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해가면서도 천막을 만드는 일로 생업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는 헬라 문화권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헬라 문화는 지혜, 곧 ‘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철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어 생계를 유지했는데, 한 곳에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린도 사람들이 볼 때 바울도 철학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그들과 같은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다른 사도들은 배우자까지 데리고 다니며 순회 사역을 했고, 생활비를 받아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바울도 얼마든지 고린도에서 사도의 권리를 누리며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의미로 바울은 성경도 이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9절에서 신명기 25장 4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바울은 하나님이 소를 걱정하셔서 이 율법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농부가 곡식을 추수할 날을 소망하며 밭을 갈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헌신하는 사도의 수고에 합당한 몫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사도로서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이방인을 전도하는 데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복음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삶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복음을 위한 희생과 손해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으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기쁨이 되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9장, 사도의권리, 복음전파, 바울, 자기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