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 왕 발락, 점쟁이 발람을 부르다 | 민 22장 2-6절 하루말씀

모압 왕 발락, 점쟁이 발람을 부르다

아모리와 바산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진을 치자, 모압 왕 발락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인간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당해낼 수 없음을 직감하고, 유브라데 강변의 유명한 점쟁이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축복과 저주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말씀]

민 22:2-6(개역개정)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더라 3 모압이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으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으므로 모압이 근심하여 4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 유브라데 강 가 브돌에 사자들을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라 하였다

[하루말씀]

바산까지 정복한 이스라엘, 모압 평지에 진을 치다

남쪽의 아모리 족속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그 길로 바산 길로 올라갑니다. 바산은 아모리 족속의 북쪽 왕국이며, 바산 왕 옥은 거인족입니다. 그러므로 바산 족속이 얼마나 거칠고 포악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한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리의 시혼 왕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바산 왕 옥의 땅도 이스라엘에게 넘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민 21:34)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바산의 패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34절의 말씀처럼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했던 것처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자 놀랍게도 3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바산 왕 옥과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 진을 쳤는데, 이 땅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가 바라보이는 건너편 땅입니다.

발락의 두려움과 미디안 장로들과의 모의

이제 22장 2절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등장합니다. 발락은 그 당시 모압의 왕입니다. 발락은 아모리가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합니다. 발락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이유는 3절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압인들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모압은 이미 아모리인들에게 점령당한 나라였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신 2:9)라고 이스라엘에게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신명기 2:9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모압을 공격하지 말 것을 명하신 말씀으로, 모압이 롯의 후손임을 근거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렵습니다. 4절에는 그 두려움이 이렇게 표현됩니다. “이스라엘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발락은 염려와 근심 가운데 미디안의 장로들을 조언자로 불러 이스라엘을 무찌를 방법을 상의합니다. 미디안 족속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며 주로 유목과 상업에 의존했으므로, 정착해 사는 모압보다 다른 세상의 정보가 많았습니다. 발락은 그 정보와 경험이 곧 지혜라 여겨 미디안 장로들에게 의뢰한 것입니다.

점쟁이 발람의 등장

그런데 미디안 장로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조언해 준 것이 아니라, 브돌에 있는 발람을 소개해 줍니다. 발람의 이름의 뜻은 ‘백성을 삼키는 자’입니다. 발람은 아마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5절에 보면 발람의 고향 브돌은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은 무역이 활발한 곳으로, 수많은 종족과 문화와 종교가 뒤섞이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발람의 고향 브돌은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곳이었으므로 신접한 사람들이나 점치는 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발람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미디안 장로들이 소개해 줄 정도라면 유명하고 명망 있는 점쟁이였을 것입니다.2발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인물로 성경에 묘사됩니다. 그는 참 선지자와 이방 술사의 경계에 있는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미디안 장로들이 이스라엘을 무찌를 방법으로 용한 점쟁이를 소개해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20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압 왕이 두려워한 것은 이스라엘 자체가 아니라 그 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능가하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점쟁이 발람을 초대하는 내용이 5-6절에 담겨 있습니다.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라.”

누구를 믿느냐가 믿음생활의 핵심이다

우리가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은 믿음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만, 모압 왕 발락은 신접한 한 사람을 믿습니다. 유명한 점쟁이 발람이 축복하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모압을 축복하면, 그 결정이 이스라엘을 몰아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몰아내는 것은 다시 재기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을 무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견고한 민족을 영적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로 축복과 저주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축복과 저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단 한 마디도 효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이 복된 자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은 복된 자리입니다. 주님의 계획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걸림돌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주님 안에서 살고, 주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생활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킬 때 우리는 주님의 축복 가운데에서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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