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간의 눈에 불합리해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심을 선언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에 근거하며,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성경말씀]
로마서 9장 14-24절(개역개정)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하루말씀]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헤아림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주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하기 쉽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출애굽기 33장 19절을 인용하여, 과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15절)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인간의 조건이나 자격에 달려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1출 33:19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로운 긍휼을 선언하는 핵심 구절로, 바울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선택과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근거함을 논증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멀어지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따르지 못하고 하나님을 판단하려 할 때입니다. 우리는 때로 말씀과 상관없이 옳고 그름을 자신의 기준으로 정하려 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불평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의 일이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차별하시거나 불의하신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입니다
특히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한 별도의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슬기로운 열 처녀의 비유처럼, 믿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깨어 있는 것입니다.2마 25:1-13의 열 처녀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깨어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함으로써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죄를 짓고 잘못을 행하면서도, 그에 따른 징계를 받는 것에 불만을 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입니다. 19절은 이러한 인간의 반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피조물은 창조주께 반문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지만, 우리는 피조물이며 구원의 은혜를 받는 자입니다. 20절의 말씀처럼,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따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특히 21절의 말씀처럼, 토기장이는 자신의 뜻에 따라 그릇을 빚고 사용할 권한이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피조물로서의 마땅한 도리입니다.3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는 렘 18:1-6에도 등장하며,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인간의 피조물 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바울은 이 이미지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이 정당함을 변호합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주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실상 믿음이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하심을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와 복을 받는 이유는 내게 어떤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있거나, 기도를 남다르게 잘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이며,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 나를 그분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게 주신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 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은혜, 토기장이 비유, 로마서 강해,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라
